조선 숙종 32년, 병술년(丙戌年), 1706년

조선 숙종 32년, 병술년(丙戌年), 1706년

1월 1일

• 비망기(備忘記)를 각도 감사와 유수(留守)에게 내려 흉년을 구제하는 뜻을 전함.

1월 8일

• 김창집(金昌集)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16일

• 임금이 종묘를 배알(拜謁)함.

2월 3일

• 한성부판윤 김창집을 우의정으로 삼음.

2월 4일

• 윤세기(尹世紀)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 도제조 최석정(崔錫鼎)이 흉년을 이유로 도성의 역사를 중지할 것을 청함.

2월 17일

• 최석정(崔錫鼎)이 전과 같이 《여지승람(輿地勝覽)》을 수정할 것을 청하므로 이를 윤허함.

2월 19일

• 황단친제(皇壇親祭)의 책축문(冊祝文)과 섭행(攝行)할 때의 축문을 사신(詞臣)으로 하여금 찬술해 올리게 하여 이를 영구 법식으로 삼게 함.

2월 20일

• 한성부에서 아뢴 산송보수(山訟步數)를 대신들로 하여금 의논하게 한 결과 숙종 2년(1676) 수교(受敎)한 ‘내(內) 청룡(靑龍) 백호(白虎)로 보호하는 산지(山地)에는 다른 사람의 입장(入葬)을 허락하지 말라.’는 글에 의해 시행하게 함.

3월 1일

• 비국(備局)에서 대신 · 육경(六卿) · 삼사(三司) 장관으로 하여금 각각 두 사람씩 천거할 것을 청함.

3월 10일

• 강현(姜鋧)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13일

• 정시문과(庭試文科)에서 홍호인(洪好人) 등 7명을 뽑아 급제(及第)를 내림.

6월 1일

• 숭례문 밖 큰 못의 물빛이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면서 뜨겁기가 끓는 물과 같아서 못에 고기가 떠 죽음.

6월 8일

• 비변사에서 재랑(齋郞)을 변통(變通)하는 일을 올림. 오묘(五廟) · 팔릉(八陵)에 각 1명은 직장(直長)으로 고쳐 만들고, 세실(世室)의 구릉(九陵)과 부묘(祔廟)하지 않은 이릉(二陵)에 각 1명은 봉사(奉事)로 고쳐 만듦.

6월 21일

• 윤세기(尹世紀)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12일

• 권시경(權是經)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14일

• 인정전(仁政殿)은 법전(法殿)이므로 연례(宴禮)는 인정전에서 행하고, 내연(內宴)은 통명전(通明殿)에서 행하도록 정함.

7월 27일

• 임금이 종묘에 전알(展謁)함.

8월 9일

• 민진후(閔鎭厚)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30일

• 80세 이상의 양반과 90세 이상의 상한(常漢)에게 경중(京中)과 외방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가자(加資)하도록 함.

9월 5일

• 서민으로서 80세 이상 노인이 250여 명인데, 이 가운데 90세 이상 노인이 26명, 100세 이상 노인이 3명임. 임금이 이들을 위해 쌀 10여 석과 소 두 마리 및 술로 공궤(供饋)하게 함.

9월 16일

• 경복궁에서 노인연(老人宴)을 행했는데, 노인 150명이 참석함.

10월 1일

• 제도(諸道)의 진구(賑救)를 끝냈다는 계문(啓聞)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상을 내림.

11월 2일

• 시강관 박봉령(朴鳳齡)이 경외(京外)에 정체된 옥수(獄囚)의 폐단을 아뢰니, 신칙(申飭)하도록 함.

12월 11일

• 이익수(李益壽)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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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辛巳年), 17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