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16년, 경신년(庚申年), 1740년

조선 영조 16년, 경신년(庚申年), 1740년

1월 9일

• 임금이 기곡제(祈穀祭)를 행함.

3월 7일

• 이재(李縡)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17일

• 조관빈(趙觀彬)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20일

• 신만(申晩)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4월 2일

• 임금이 하향(夏享)을 행하기 위해 태묘(太廟)에 나아감.

4월 11일

• 신사철(申思喆)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19일

• 종묘의 신탑(神榻)을 모두 당주홍(唐朱紅)으로 고쳐 칠하도록 하고 이를 정식(定式)으로 삼음.

6월 15일

• 임금이 효묘(孝廟)에게 존호(尊號)를 더 올리기 위해 장차 친제(親祭)할 것이기 때문에 인정전의 월대(月臺)에서 서계(誓戒)함.

6월 22일

• 임금이 효종의 시호(諡號)를 더 올리기 위해 태묘(太廟)에서 친제(親祭)를 행함.

윤6월 2일

• 병조에서 경과(慶科)인 무과초시(武科初試)의 액수(額數)를 계품(啓稟)하니 500명을 뽑도록 함.

7월 4일

• 민형수(閔亨洙)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7월 5일

• 교서관(校書館)에 《치평요람(治平要覽)》을 인간(印刊)하여 올리도록 함.

8월 1일

• 훈련대장 구성임(具聖任)이 창의문(彰義門)은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의군(義軍)이 경유하여 들어왔던 곳이므로 마땅히 개수하여 표시할 것을 청하므로 임금이 1741년 봄에 개수하도록 함.

8월 8일

• 임금이 태학(太學)에 나아가 석채례(釋菜禮)를 행함.

8월 29일

• 임금이 후릉(厚陵)에 가기 위해 판부사 김흥경(金興慶)을 유도대신(留都大臣)으로 삼음.

9월 2일

• 임금이 만월대에 나아가 문무의 시험을 보였는데, 문과 3명, 무과 10명을 뽑음.

10월 11일

• 홍경보(洪景輔)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0월 24일

• 증광문과회시(增廣文科會試)에서 40명이 합격함.

11월 5일

• 태릉(泰陵)에 도둑이 들어 제기(祭器)와 신욕(神褥)을 훔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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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辛巳年), 17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