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27년, 신미년(辛未年), 1751년

조선 영조 27년, 신미년(辛未年), 1751년

1월 15일

• 서명빈(徐命彬)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3일

• 사복시(司僕寺)로 하여금 연여(輦輿)를 금으로 그리지 말도록 함.

2월 18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서 정시(庭試)에 친림(親臨)하여 10명을 뽑음.

3월 5일

• 임금이 대보단(大報壇)에서 망위례(望位禮)를 행함.

3월 13일

• 홍봉한(洪鳳漢)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5월 2일

• 홍상한(洪象漢)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1일

• 윤급(尹汲)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5월 13일

•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서 원손(元孫) 정(琔)을 책봉하여 왕세손(王世孫)으로 삼음.

5월 26일

• 조운규(趙雲逵)를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윤5월 11일

• 차비문(差備門) 안의 실화(失火)로 조정에서 문안함.

윤5월 23일

• 박준(朴imagefont)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윤5월 29일

• 한성부우윤 이병연(李秉淵)이 죽었는데, 시(詩)를 잘 지어 지은 시가 수만 수(首)임.

6월 10일

• 황자(黃梓)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7월 2일

• 사마온공(司馬溫公)의 《계고록(稽古錄)》을 간행하도록 함.

7월 6일

• 이정보(李鼎輔)를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7월 11일

• 가을비가 내려 곡식을 손상시키므로 사대문에서 영제(禜祭)를 지냄.

7월 17일

• 임금이 탕춘대(蕩春臺)에서 장사(將士)들의 활쏘기를 시험하고, 육상묘(毓祥廟)를 배알함.

7월 19일

• 황정(黃晸)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7월 26일

• 이일제(李日躋)를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9월 9일

• 신만(申晩)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11일

• 도성의 수성절목(守城節目)을 반포함.

9월 18일

• 임금이 명정전에서 정시(庭試)와 전시(殿試)를 행하여 20명을 뽑음.

9월 27일

• 고려의 충신 두문동(杜門洞) 72명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함.

10월 8일

• 임금이 어의궁(於義宮) 잠저(潛邸)에 거둥함.

11월 10일

• 예조참판 홍봉한(洪鳳漢)이 도성 내 개울이 모두 막혀서 여름 장마철에 피해가 심하므로 방민(坊民)과 삼군문(三軍門)으로 하여금 준설할 것을 청함.

11월 12일

• 호랑이가 한성에 들어옴.

11월 15일

• 박문수(朴文秀)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26일

• 종묘 · 사직의 납향대제(臘享大祭) 때 숙종 44년(1718)의 예에 의해 음악을 사용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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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辛酉年), 18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