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11년, 정미년(丁未年), 1787년

조선 정조 11년, 정미년(丁未年), 1787년

1월 1일

• 임금이 사직단에 나아갔다가 종로에 들러 공시인(貢市人)들에게 폐단을 물음.

1월 2일

• 사직단에서 기곡제(祈穀祭)를 지내고 권농의 윤음을 내림.

1월 3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서 군사들에게 음식을 내림.

1월 4일

• 송재경(宋載經)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10일

• 경모궁(景慕宮) 남쪽 담장 밖의 문희묘(文禧廟)를 의빈궁(宜嬪宮) 서쪽 담장 밖으로 옮김.

1월 24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문무과의 정시와 전시를 실시하여 문과에서 15명, 무과에서 140명을 뽑음.

2월 12일

• 임금이 창덕궁에서 수빈(綏嬪)과 가례를 행함.

2월 30일

• 종부시(宗簿寺)에서 《수정선원기략(修正璿源紀略)》을 올림.

3월 7일

• 임금이 황단(皇壇)에서 망배례를 올리고 충신의 자손 가운데 반열에 참석한 유무(儒武)를 대상으로 제술과 활쏘기를 시험하고 시상함.

3월 10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신구(新舊)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와 활쏘기 시험을 행함.

3월 11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서북지방의 별부료(別付料) 시사(試射)를 행함.

3월 21일

• 동점(銅店)과 은점(銀店)의 사사로운 설치를 금지함.

3월 24일

• 임금이 명광문(明光門)에서 표(表)와 부(賦)로 나누어 삼일제(三日製)를 실시하여 표(表)에서 수석을 차지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함.

4월 6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서 내시사(內試射)를 행하고 초계문신의 친시를 행함.

4월 18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기우제를 지냄.

4월 22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무신을 대상으로 강(講)과 활쏘기를 시험함.

이달

• 한성의 서부 동막리에 화재가 발생하여 민가 500여 호가 불탐.

5월 22일

• 임금이 국초 이래 여러 관각(館閣)의 문자를 가져다가 편집하여 만든 《문원보불(文苑黼黻)》을 임인자(壬寅字)로 간행하여 나누어 줌.

5월 27일

• 예조에서 기청제(祈晴祭)를 지낼 것을 요청함.

5월 29일

• 도성의 사대문에 영제(禜祭)를 지냄.

6월 7일

• 도성의 사대문에서 기청제와 보사제(報謝祭)를 지냄.

7월 4일

• 금천에 사는 이재영(李在榮)을 물속에서 살린 사노(私奴) 술이동(述而同)에게 급복(給復)함.

7월 11일

• 성균관에서 칠석제(七夕製)를 설행함.

7월 18일

• 필운대(弼雲臺) 근처에서 석재를 채취하는 자를 금하고 해당 지역 부서의 당상관과 장신(將臣)을 추고함.

7월 27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서 장용영(壯勇營) 시사(試射)를 행함.

7월 28일

• 인정전에서 도기유생(到記儒生)의 제술을 시험하고, 희정당에서 거재유생(居齋儒生)의 강서와 참반유생(參班儒生)의 제술을 각각 시험함.

8월 7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서 서총대(瑞葱臺) 시사(試射)를 행함.

8월 22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전경문신(專經文臣) · 제술문신 · 초계문신 · 무신당상 등을 대상으로 각기 시험을 행함.

8월 26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내금위의 활 쏘기를 시험함.

• 백성이 종각에 들어가 상언(上言)하기 위해 종을 침.

9월 11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장용청(壯勇廳) 시사를 행함.

9월 21일

• 궁중에 산실청(産室廳)을 설치한 관계로 전국에 형벌을 멈추도록 함.

10월 10일

• 비변사에서 사신으로 파견되는 자가 지켜야 할 사행재거사목(使行imagefont去事目)을 정하여 바침.

11월 17일

• 집춘문(集春門)에서 감제(柑製)를 실시하여 수석을 차지한 정의조(鄭毅祚)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11월 26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선전관에게 활쏘기를 시험함.

12월 28일

• 기곡제(祈穀祭)를 대사(大祀)에 포함시키도록 함.

이해

• 궁중에 있던 승문원(承文院)을 궐 밖의 중부 정선방으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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