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3년, 계해년(癸亥年), 1803년

조선 순조 3년, 계해년(癸亥年), 1803년

1월 1일

• 《선원보략(璿源譜略)》의 증수를 완성함.

1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회계장부를 올림.

2월 26일

• 이만수(李晩秀)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2월 10일

• 임금이 등극한 후 처음으로 영희전(永禧殿)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행함.

윤2월 11일

• 민태혁(閔台爀)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2월 20일

• 한만유(韓晩裕)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2월 25일

• 장용영 혁파 이후 한성의 병마(兵馬)가 부족하여 제주에서 올라오는 공마(貢馬) 가운데 식년에 올라오는 말 150필과 매년 올라오는 70필을 훈련도감에 2/3, 금위영과 어영청에 1/3을 각각 소속시키도록 하는 것을 정식으로 삼음.

윤2월 27일

• 청의 사신을 모화관에서 맞이하고, 인정전에서 조칙(詔勅)과 고명(誥命)을 받음.

3월 5일

• 내각(內閣)에서 경모궁(景慕宮)의 《예제선사본(睿製繕寫本)》 7권을 만들어 올림.

3월 12일

• 이의필(李義弼)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22일

• 임금이 종묘와 영녕전에 전배(展拜)하고 난 후 중궁전이 묘현례(廟見禮)를 행함. 이어서 경모궁(景慕宮)에 나아가 전알(展謁)함.

5월 21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기우제를 지냄.

6월 12일

• 정대용(鄭大容)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6일

• 한만유(韓晩裕)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27일

• 임금이 모화관에서 열무(閱武)하고 서총대(瑞蔥臺)에서 시사(試射)함.

11월 3일

• 임시철(林蓍喆)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4일

• 사직서의 악기고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됨.

12월 13일

• 창덕궁 선정전에서 화재가 일어나 인정전까지 소실됨. 화재로 임금이 창경궁으로 이어함.

12월 27일

• 인정전 중건 공사를 위한 정초(定礎)를 놓음.

12월 28일

•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순조의 친정이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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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辛酉年), 18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