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25년, 을유년(乙酉年), 1825년
1월 8일
• 임금이 왕세자와 함께 종묘와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1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1824년 회계장부를 올림.
1월 16일
• 홍희신(洪羲臣)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22일
• 성균관에서 인일제(人日製)를 행함.
1월 25일
• 조종영(趙鍾永)으로 하여금 《동문휘고(同文彙考)》를 속인(續印)하도록 함.
1월 27일
• 인정전에서 춘도기유생(春到記儒生)을 시험하여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수석한 자를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2월 4일
• 임금이 왕세자와 함께 신연(神輦)을 받들어 경우궁(景祐宮)으로 가서 입묘봉안제(入廟奉安祭)를 거행함.
2월 5일
• 경우궁의 입묘를 감독한 대신 이하 사람들을 시상함.
2월 10일
• 심상규(沈象奎)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12일
• 임금이 왕세자와 함께 휘경원(徽慶園)에 전알(展謁)하고 제사지냄. 환궁할 때 동관왕묘(東關王廟)에 들러 전배(展拜)함.
2월 20일
• 식년감시(式年監試) 복시(覆試)를 설행함.
2월 23일
• 박종훈(朴宗薰)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4일
• 휘경원의 정자각 개수를 완료함.
3월 4일
• 성균관에서 삼일제(三日製)를 행함.
3월 6일
• 김상휴(金相休)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7일
• 영희전에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저경궁(儲慶宮)에 전배(展拜)함.
3월 13일
• 인정전에서 생원 ·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발표함.
3월 23일
• 정릉(靖陵)의 정자각(丁子閣)을 개수함.
3월 27일
• 임금이 육상궁(毓祥宮) · 연호궁(延祜宮) · 선희궁(宣禧宮) · 장보각(藏譜閣) · 의소묘(懿昭廟)에 전배(展拜)함.
4월 3일
• 인정전에서 태묘(太廟) 하향대제(夏享大祭)의 서계(誓戒)를 행함.
4월 13일
• 인정전에서 문과 전시를, 훈련원에서 무과 전시를 설행하여 문과 48명, 무과 503명을 뽑음.
4월 21일
• 문묘에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한 후 춘당대(春塘臺)에서 알성 문 · 무과를 설행하여 문과 5명을, 무과 71명을 뽑음.
4월 26일
• 춘당대에서 서북별부료(西北別付料)의 시사(試射)를 행함.
• 알성시(謁聖試)에서 황윤중(黃允中)의 시권(試券)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상언(上言) 체제를 띠고 있어 죄를 줌.
4월 29일
• 육상궁(毓祥宮)과 냉천정(冷泉亭)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곳에 비가 새 수리함. 임금이 육상궁에 전배(展拜)하고 어진을 봉안(奉安)함.
5월 6일
• 임금이 경우궁(景祐宮)에 전배(展拜)하고 재숙(齋宿)함.
5월 21일
• 신의왕후(神懿王后)가 태어난 옛 터에 비각을 세우고 비문 제술관에게 상을 내림.
5월 26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첫 번째 기우제를 지냄.
5월 29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두 번째 기우제를 지냄.
5월 30일
• 경외(京外)의 사형수들 중 심리하여 살려준 자가 21명임.
6월 2일
• 남단과 우사단에서 세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5일
• 사직과 북교에서 네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8일
• 종묘에서 다섯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11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여섯 번째 기우제를 지내고 비가 내리자 보사제(報謝祭)를 설행함.
6월 12일
• 헌릉(獻陵)의 나무를 훼손한 일로 능의 관리를 치죄함.
6월 14일
• 김이교(金履喬)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20일
• 송면재(宋冕載)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 재해로 인해 금위영과 어영청의 상번(上番)을 1주년에 한하여 정면(停免)하게 함.
7월 3일
• 선혜청의 화재로 고사(庫舍) 132칸이 소실되고, 쌀 5,457석, 전미(田米) 864석, 면포 23동 46필, 마포 42필, 돈 3,227냥이 불탐.
7월 13일
• 임금이 왕세자와 함께 태묘와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7월 23일
• 임금이 영화당(暎化堂)에서 내금위(內禁衛) 시사(試射)를 행함.
7월 24일
• 임금이 영화당(暎化堂)에서 별군직(別軍職)과 선전관(宣傳官)의 가을 시사(試射)를 행함.
8월 5일
• 김이재(金履載)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28일
• 경릉(敬陵)과 홍릉(弘陵)의 보토(補土) 작업이 완료됨.
9월 10일
• 건원릉(健元陵)에 전알(展謁)하고 제사지낸 후 원릉(元陵) · 휘경원(徽慶園)에 전알함.
9월 15일
• 성균관에서 구일제(九日製)를 행함.
9월 17일
• 춘당대에서 서총대시사(瑞蔥臺試射)를 행함.
10월 9일
• 이희갑(李羲甲)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 경조(京兆)로 하여금 사대부 집에서 술을 빚는 폐단을 엄금하도록 함.
10월 18일
• 춘당대에서 칠석제(七夕製)를 행함.
10월 20일
• 인정전에서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을 시험하여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수석한 자를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11월 27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황감제(黃柑製)를 행하여 수석을 차지한 김동건(金東健)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12월 1일
•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하고, 옷이 얇은 기병(騎兵)에게 옷감을 지급하도록 함.
12월 24일
• 김이재(金履載)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30일
• 한성부에서 1825년 전국의 호구 수를 올림. 원호 154만 9,653호, 인구 655만 8,784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