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철종 8년, 정사년(丁巳年), 1857년

조선 철종 8년, 정사년(丁巳年), 1857년

1월 2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종묘와 영녕전의 춘향(春享)에 쓸 향과 축문을 전함.

1월 7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사직단의 기곡대제(祈穀大祭)에 쓸 향과 축문을 전함.

1월 9일

• 임금이 인릉에 거둥할 때 주교(舟橋)를 동작진(銅雀津)으로 옮겨 설치하도록 함.

1월 10일

• 임금이 종묘에 전알(展謁)하고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1월 16일

• 오취선(吳取善)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20일

• 임금이 경우궁과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사우(祠宇)에 전배함.

1월 26일

• 이근우(李根友)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6일

• 춘당대에서 춘도기(春到記)를 행하여 강(講)과 부(賦)에서 2명씩을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함.

2월 21일

• 임금이 영희전(永禧殿)에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저경궁(儲慶宮)에 나아가 전배함.

2월 28일

• 훈련대장으로 하여금 삼영문(三營門) · 총융청(摠戎廳) · 수어청(守禦廳)을 거느리고 인릉(仁陵)에 식목(植木)하도록 함.

3월 3일

• 오부 안에 기유생(己酉生)인 사대부와 서인의 단자(單子)를 거두어들임.

3월 20일

• 김정집(金鼎集)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28일

• 인릉에 나무 심는 일을 훈련대장의 책임 아래 훈련도감 · 금위영 · 어영청 · 총융청 · 수어청에서 협력하여 추진하도록 함.

4월 5일

• 춘당대에 나아가 내삼청(內三廳)과 서북별부료(西北別付料) 시사(試射)를 행함.

4월 6일

• 서대순(徐戴淳)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9일

• 춘당대에 나아가 정시 문 · 무과를 시행하여 문과에서 10명, 무과에서 691명을 뽑음.

4월 13일

• 인정전의 중수가 진행되어 기와를 올림.

4월 17일

• 춘당대에 나아가 정시 문 · 무과를 행하여 방방(放榜)함.

5월 23일

•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을 석실서원(石室書院)에 추배(追配)하도록 함.

윤5월 18일

• 인정전에 나아가 전경(專經) 한학문신(漢學文臣) 전강(殿講)을 행함.

6월 23일

• 한성 사부(四部)의 무너진 민가를 구휼함.

6월 26일

• 김병교(金炳喬)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3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종묘와 영녕전의 추향(秋享)에 쓸 향과 축문을 전함.

• 임금이 종묘에 전알하고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한 후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과 은언군(恩彦君)의 사우(祠宇)에 전배함.

7월 21일

• 도성의 사대문에 영제(禜祭)를 지냄.

7월 22일

• 선전관(宣傳官)과 오부(五部) 관원으로 하여금 홍수로 인해 무너진 집을 조사하여 진휼하도록 함.

7월 25일

• 한성 사부(四部)의 무너진 민가를 구휼함.

8월 1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경모궁(景慕宮) 추향(秋享)에 쓸 향과 축문을 전함.

8월 2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남단제(南壇祭)에 쓸 향과 축문을 전함.

8월 4일

• 대왕대비(순조 비) 김씨가 양심합(養心閤)에서 승하함.

• 순조 비 순원왕후 빈전(殯殿)을 환경전(歡慶殿)으로 함.

• 종묘 · 영녕전 · 사직 · 경모궁과 여러 산천에서 날을 기다릴 것 없이 기도제를 설행하도록 함.

8월 10일

• 순종(純宗)의 묘호를 순조(純祖)로 고침.

• 대행대왕대비전의 시호를 순원(純元)이라 올림.

9월 6일

• 서헌순(徐憲淳)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28일

• 인릉(仁陵)의 혼유석은 1856년에 배치한 것을 그대로 쓰도록 함.

10월 15일

• 밤에 빈전도감(殯殿都監) 가가(假家)에서 불이 나 창경궁 선인문(宣仁門)과 동북소(東北所) · 부장청(部將廳) · 위장소(衛將所) · 주자소(鑄字所)가 소실됨.

12월 16일

• 대행대왕대비전의 영가(靈駕)가 산릉으로 출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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