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12년, 을해년(乙亥年), 1875년

조선 고종 12년, 을해년(乙亥年), 1875년

2월 6일

• 김수현(金壽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18일

• 인정전에서 왕세자의 책봉례(冊封禮)를 거행함.

3월 2일

• 민규호(閔奎鎬)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27일

• 경복궁 삼전각(三殿閣)의 중건을 시작함.

4월 5일

• 경복궁 중건에 쓸 돈을 호조에서 20만 냥, 선혜청에서 10만 냥을 내려 보냄.

4월 14일

• 이회정(李會正)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4월 25일

• 선혜청의 보유액이 3만 냥에 불과하여 다른 방도를 강구하도록 함.

4월 28일

• 정기세(鄭基世)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6일

• 무리를 지어 양반집에 들어가 사대부를 구타한 액예(掖隸)들을 사형에 처함.

5월 17일

• 이용희(李容熙)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9일

• 경복궁의 전각 중건공사가 끝날 때까지 개인의 목재 사용을 금함.

5월 27일

• 왕과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 왕세자 등이 모두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옮김.

5월 28일

• 임금의 어진을 수정전(修政殿)으로 옮김.

5월 29일

• 경복궁의 3전각 중건 공사가 끝날 때까지 궐내 각사의 수리 공사를 중지함.

6월 15일

• 이승보(李承輔)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17일

• 《일성록》 504책의 보충을 완성함.

7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여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8월 1일

• 이병문(李秉文)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8일

• 임금이 한성부 오부의 집이 허물어진 자에게 휼전을 내림.

8월 22일

• 영종도(永宗島) 첨사(僉使) 이민덕(李敏德)이 이양선(異樣船, 일본 군함 운양호)이 난지도에 정박하고 있다고 보고함.

9월 13일

• 김병주(金炳imagefont)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0월 2일

• 강란형(姜蘭馨)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10일

• 헌종과 철종의 어진을 경모궁(景慕宮)으로 옮겨 봉안함.

12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가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12월 18일

• 정건조(鄭健朝)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22일

• 한성에 살고 있는 거지들을 휼전함.

12월 29일

• 한성부에서 1875년 전국과 오부의 호구 수를 보고함. 한성부 인구 20만 951명(남자 9만 7,708명, 여자 10만 3,243명), 호수 4만 5,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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