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24년, 정해년(丁亥年), 1887년
1월 9일
• 옷이 얇은 군인과 거지들에게 휼전(恤典)을 베풂.
1월 13일
•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으로 나아가 대왕대비전에 존호(尊號) · 책보(冊寶) · 치사(致詞) · 전문(箋文)을 올림.
1월 15일
• 각사(各司) · 각영(各營)에서 1886년 10월 · 11월 · 12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 왕세자빈의 관례를 행함.
1월 18일
• 한성부판윤 이원회(李元會)를 경략사(經略使)로 삼아 거문도(巨文島)에 보내 형지(形止)를 살펴보고 설진방략(設鎭方略)을 보고하도록 함.
1월 25일
• 임금이 영희전(永禧殿)과 경모궁(景慕宮)에 전알(展謁)함.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 밖에서 공시인(貢市人)들을 만나 폐단을 물음.
이달
• 일본 상인들이 종로 용동(龍洞) 일대에서 상점 개설을 요구하는 공문을 외무독판 김윤식(金允植)에게 보내옴.
2월 3일
• 종로의 상인들이 청나라와 일본 양국 상인들의 한성개잔(漢城開棧)에 반대하여 폐문철시(閉門撤市)하고 시위를 벌임.
2월 8일
• 죄가 가벼운 죄수들을 석방함.
2월 10일
• 일본인이 상업회의소(商業會議所) 설립인가를 신청함.
2월 14일
• 경복궁 전등 설비를 위해 초빙된 미국인 기사 메케이가 조선인에 의해 저격당함.
2월 23일
• 상업회의소 설립을 인가함. 20개조의 운영규칙을 제정하고 10명의 임원을 두도록 함.
2월 27일
• 조강하(趙康夏)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13일
• 조선전보총국(朝鮮電報總局)인 남전국(南電局)을 설치함.
3월 15일
• 경무대에서 경과 정시 문 · 무과를 시행하여 문과 5명, 무과 29명을 뽑음.
3월 25일
• 청나라가 부산~한성간 육로 전선 가설권을 조선정부에 이양함.
4월 5일
• 광무국(鑛務局)을 설치함.
4월 8일
• 아펜젤러가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貞洞敎會)를 세움.
4월 21일
• 대궐 안에서 이루어지던 죄인 신문을 금지하도록 함.
4월 24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1차 기우제를 지냄.
4월 27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2차 기우제를 지냄.
윤4월 1일
• 심의풍(沈宜豊)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4월 7일
• 윤영신(尹榮信)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4월 9일
• 를 비준 교환함.
윤4월 27일
• 좌 · 우포도대장으로 하여금 한강 연안의 무명잡세(無名雜稅) 징수를 엄금하도록 함.
5월 1일
• 남단과 우사단에서 3차 기우제를 지냄.
5월 2일
• 육영공원의 방학을 5월 11일에서 7월 28일까지로 함.
5월 4일
• 사직단과 북쪽 교외에서 4차 기우제를 지냄.
5월 7일
• 종묘에서 5차 기우제를 지냄.
5월 10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6차 기우제를 지냄.
5월 13일
• 민치서(閔致序)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6일
• 종묘에서 특별 기우제를 지냄.
5월 18일
• 단비가 내려 남쪽 제단에서 특별히 기우제를 지내기로 한 것을 중지함.
5월 26일
• 박제관(朴齊寬)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27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다시 기우제를 지냄.
6월 1일
•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을 간행함.
6월 18일
• 한성부서윤(庶尹)을 소윤(小尹)으로 바꾸어 각국 영사와 섭외사무를 전담하도록 함.
6월 29일
• 이응진(李應辰)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이달
• 엘러스가 정신여학당(貞信女學堂)을 창설함.
7월 4일
• 서상우(徐相雨)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19일
• 이원회(李元會)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20일
• 성균관을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함.
8월 6일
• 예조로 하여금 주차미국전권대신(駐箚美國全權大臣) 인신(印信) 2과(顆)와 한성부소윤 인신을 만들어 주도록 함.
9월 2일
• 한성부의 화재로 종루와 각 전(廛)이 불에 탐.
9월 4일
• 한성부의 화재 복구를 위해 10만 냥과 선혜청의 쌀 50동(同)을 지급함.
10월 9일
• 김창희(金昌熙)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0월 11일
• 호조의 별예방(別例房) 20여 칸이 소실됨.
10월 20일
• 감리교회 선교의사 윌리암 스크랜톤(William B. Scranton M.D.)과 여의사 하워드(Howard)가 이화학당 구내에 최초의 부인병원을 개설하였는데 왕비(명성황후)가 이를 ‘보구여관(普救女館)’이라 명명함.
10월 29일
• 전환국(典圜局) 조폐창(造幣廠)과 기기국(機器局) 기기창(機器廠)이 준공됨.
11월 1일
• 배재학당에 벽돌로 건축한 강당이 준공됨.
12월 10일
• 한성부와 그 주위에 도둑이 심하여 포도청의 기찰을 엄히 하도록 함.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기록하는 주서(注書)들의 대필을 금지함.
12월 16일
• 경무대에서 경과 정시 문 · 무과를 시행하여 문과 10명, 무과 100명을 뽑음.
12월 25일
• 연무공원(鍊武公院)을 설치함.
12월 30일
• 한성부에서 1887년 전국의 호구 수를 보고함.
이해
• 한성에 상공회의소(商工會議所)가 설립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