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광무 10년, 병오년(丙午年), 1906년
1월 19일
• 통감부(統監府), <이사청의 위치 및 관할구역>을 발포 · 시행함. 경성이사청은 경성에 두고 경기도 동부 일대 지역을 관할하도록 함.
•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漢城共同倉庫株式會社), 부동산 담보로도 대부하기로 함.
1월 20일
• 고종, 혹한으로 경범 죄인과 70세 이상, 15세 이하의 죄수를 즉시 석방하도록 함.
1월 31일
• 서울의 일본공사관이 철폐됨.
이달
• 경부철도주식회사, 영등포~남대문간 철도 선로 건설공사를 준공함.
2월 1일
• 한성에 통감부를 설치, 임시 통감대리 하세가와 요시마치(長谷川好道)가 통감부 개청식을 거행함.
• 경성이사청(京城理事廳)을 일본영사관 건물에 설치, 업무 시작.
2월 6일
• 청(淸) 정부, 주한 공사를 철퇴하고 마정량(馬廷亮)을 주한 총영사로 임명함.
• 일본정부, 한성 주재 러시아영사 프란손(Plançon) 임명을 인가함.
2월 28일
• 일진회(一進會),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에 오는 것을 대비하여 ‘환영’이라는 현수막을 남대문에 게시함.
이달
• 통감부 청사 건축 착공.
3월 2일
•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 경부선 특별열차 편으로 서울에 옴.
3월 14일
• 시중에 전황(錢荒)이 풀리지 않아 각종 물품이 등귀(騰貴)하여 국민생활에 큰 타격을 줌.
3월 16일
• 가을~겨울에 동궁(東宮)의 가례를 치를 것이므로 13세~20세의 처자에 대한 혼인을 금지함.
3월 18일
• 서울에 거주하는 정재홍(鄭在洪)이 인천항에의 한국상인 전용 부두(埠頭) 건설 인가를 청원함.
이달
• 용산 방면 일본인거주지역과 남대문로가 연결되는 지점에 일본 수입 상품을 판매하는 보세시장(保稅市場) 개설.
4월 6일
• 일본에 수 년간 머물러 있던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귀국함.
4월 11일
• 한성상업회의소 총대(總代) 이군필(李君弼) 등이 상업 실정이 갈수록 곤란해지므로 백동화(白銅貨) 교환 기한을 연기할 것을 정부에 제의함.
4월 25일
• 고종, 경운궁 대안문(大安門)을 수리하도록 하고,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꾸라고 함.
4월 26일
• 유동(油洞)에 사는 박기영(朴基英)이 토목건축회사를 창설하고자 정부에 청원함.
이달
• 용산에 일본의 군사기지 건설공사를 시작함.
• 한성부의 관제를 개혁하여 기수(技手)를 둠. 이로써 토지측량과 제증명 발급업무가 한성부의 새 업무로 등장함.
5월 8일
• 한성부재판소 판사에 장도(張燾) · 최문현(崔文鉉) 등을 임명함.
5월 10일
• 서울의 실업가 30여 명이 (주)한일은행 설립 인가를 신청함.
5월 19일
• (주)한일은행(韓一銀行) 설립 인가.
5월 31일
• 군부(軍部),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내에서 일어난 의병을 진압하기 위하여 경병(京兵) 50명을 파견함.
이달
• 제일은행 한성지점을 제일은행 한국총지점으로 승격.
6월 1일
• 주식회사 한성농공은행(漢城農工銀行)을 설립함.
6월 4일
• 한성 제일은행지점에 일본 오사카조폐국(大阪造幣局)으로부터 반전동화(半錢銅貨) 5천 원이 도착함.
6월 9일
• 독립관(獨立館) 내에서 한성농공은행(漢城農工銀行) 개업식을 거행함.
6월 16일
• 의병장 최익현(崔益鉉) · 임병찬(林炳瓚) 등이 전라북도 전주에서 한성 일본군사령부로 압송됨.
이달
• 서울역~한강까지의 한강로를 완공함.
• 한성 내 각 경찰서에 일본인 경시(警視) 1명, 경부(警部) 7명, 순사(巡査) 약간 명을 두는 경찰기구를 편성함.
7월 6일
• 반포. 궁전과 궁문 출입을 단속함.
8월 2일
• 일진회(一進會), 서소문 내 제3호 양옥(洋屋)에서 진흥회사(進興會社)를 개업함.
8월 8일
• 한성중앙금고(漢城中央金庫)에 일본 오사카조폐국(大阪造幣局)에서 주조한 반전동화(半錢銅貨) 5천 원이 도착함.
• 한일은행 영업 개시.
8월 15일
• 한국주차일본군사령부가 정식으로 발족됨.
• 경성거류민단(京城居留民團) 설치.
• 남산의 수목 채취와 조수(鳥獸) 포획을 금지하는 <공원규칙>을 발포함.
8월 16일
• 한성부윤 박의병(朴義秉)을 평양군용지조사위원(平壤軍用地調査委員)에 임명.
8월 18일
• 한성부 참서관(參書官) 김창한(金彰漢)을 내부(內部) 경무국장에 임명.
8월 23일
• 고종, 한성신보사(漢城新報社) 후신으로 창설 예정인 경성일보사(京城日報社)의 사장 이토유칸(伊東祐侃)과, 황성신문사(皇城新聞社)를 방문함.
8월 30일
• 정부, 평리원(平理院)과 한성재판소를 새로 짓기로 결정하고 탁지부(度支部)에 건축비 8만 원을 청구함.
이달
• 농상공부, 낙산(洛山) 아래에 공예장(工藝場)을 설립하기로 결정함.
9월 4일
• 의병 박량래(朴樑來) · 전덕원(全德元) 등이 의주에서 한성으로 압송됨.
9월 13일
• 고종, 준명당(浚明堂)에서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며 입궐한 각국 영사(領事)를 접견함. 경복궁에서는 만수축하원유회(萬壽祝賀苑遊會)를 개최함.
9월 14일
• 한성 서부 경무분서(警務分署) 용산분파소를 설치함.
9월 20일
• 마포에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출장소를 설치함.
9월 25일
• 의친왕(義親王), 일본에 가기 위하여 경부선 열차 편으로 출발함.
10월 4일
• 한성부윤 박의병(朴義秉)을 경상남도 진해만 군항지조사위원장에 임명.
10월 15일
• 수동(壽洞) 2층 양옥에 농공은행소(農工銀行所)를 설립함.
10월 19일
• 한성농공은행(漢城農工銀行)에 일본흥업은행사무소(日本興業銀行事務所) 합설(合設).
이달
• 일본인 등이 굴강회사(掘江會社)를 설립, 한강 상류에서 직류(直流)를 곡류(曲流)로 흐르게 하여 짐을 나르는 배[卜船]로부터 세금을 받아 민원이 많음.
11월 2일
• 일본인 야마구찌(山口)에게 보선회사(保船會社) 설치를 인가함.
11월 25일
• 한성부판윤 박의병(朴義秉), 내부(內部) 회계국장 김관현(金寬鉉) 등을 일본 특사수원(特使隨員)에 임명.
12월 10일
• 러시아인 3명과 통역 1명이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을 유람하는 것을 금하지 못한 책임으로 경무관 및 총순(總巡), 순검 등을 문책함.
12월 19일
• 대한문(大漢門) 공사 완성.
12월 31일
• 중명전(重明殿)에서 황태자비 삼간택(三揀擇)을 실시하여 총변 윤택영(尹澤榮)의 딸로 정함.
이달
• 금융사정이 절박하여 한성 내외의 집과 토지를 전당 잡는 사람들이 날마다 일본인 전당국(典當局)을 찾음.
이해
• 남대문 밖 평동에 있는 한미전기회사(韓美電氣會社) 콜브란(H.Collbran)의 저택을 매수하여 독일영사관으로 사용하고, 본래 독일영사관 건물은 경성구락부로 사용함.
• 경운궁 중화전(中和殿)을 중건함.
• 남대문 밖~남산 일대, 이태원, 만초전~한강에 이르는 약 300만 평이 일본군 군용지로 수용됨.
• 현재의 사보이호텔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미쓰코시오복점(三越吳服店)을 개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