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14년, 정축년(丁丑年), 1877년

조선 고종 14년, 정축년(丁丑年), 1877년

1월 20일

• 진휼청에서 한 달간 한성 동부의 가난한 자에게 낮은 가격으로 쌀 640섬 5말을 발매한 결과를 아룀.

1월 21일

• 진휼청에서 한 달간 한성 남부의 가난한 자에게 낮은 가격으로 쌀 465섬 11말을 발매한 결과를 아룀.

1월 22일

• 진휼청에서 한 달간 한성 중부의 가난한 자에게 낮은 가격으로 쌀 340섬 1말을 발매한 결과를 아룀.

1월 30일

• 한성의 각 관청과 각 군영에서 1876년 겨울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3월 10일

• 임금이 창덕궁으로 옮김.

4월 9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정시문 · 무과(庭試文武科)를 시행하여 문과 5명, 무과 616명을 뽑음.

5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5월 25일

• 이경하(李景夏)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26일

• 북한산성의 상할 염려가 있는 별고미(別庫米)를 산성의 군졸들에게 나누어 줌.

6월 9일

• 폭우로 한성부 민가 378호가 파괴됨.

6월 12일

• 한성부의 집이 무너져 깔려 죽은 사람들에게 휼전을 베풀어 줌.

7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여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8월 10일

•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 군병들이 급료 지급을 이유로 폭동을 기도함.

10월 9일

• 어영청에서 새로 짓는 야소탄고(冶所炭庫) 22칸이 불에 소실됨.

10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가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10월 21일

• 일본의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 공사 일행 40여 명이 조선정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도성에 들어옴.

10월 26일

• 일본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가 고종에게 국서를 바친 후 서대문 밖 청수관(淸水館)에 머묾.

12월 18일

• 조석우(曺錫雨)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26일

• 예조 창고에 둔 각종 의궤(儀軌) 100여 권을 도난당함.

• 한성부에 비치된 호적 일부를 도난당함.

12월 30일

• 한성부에서 1877년 전국과 오부의 호구 수를 보고함. 한성부 인구 19만 7,192명(남자 9만 6,964명, 여자 10만 228명), 호수 4만 4,413호.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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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丙申年), 1896년
서울육백년사 연표 현대
서울육백년사 연표 현대 - 정치 경제
정유년(丁酉年), 1897년
신축년(辛丑年), 1901년
병오년(丙午年), 1906년
신해년(辛亥年), 1911년
병진년(丙辰年), 19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