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3년, 병인년(丙寅年), 1866년

조선 고종 3년, 병인년(丙寅年), 1866년

1월 2일

• 이동현(李東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5일

• 천주교도 김장운(金長雲) · 최형(崔炯) 등을 체포함.

1월 9일

• 천주교도 장경일(張敬一, Berneux) 주교와 홍봉주(洪鳳周)를 체포함.

1월 11일

• 프랑스 신부 브르트니에르(Bretenieres)와 천주교도 정의배(丁義培)가 한성에서 체포됨.

1월 13일

• 체포한 천주교도들에 대하여 사형을 선언함.

1월 16일

• 천주교 신도 남종삼(南鍾三)이 체포됨.

1월 18일

• 한성부를 비롯 전국에 20일까지 천주교 관련 서적[邪書]을 소각시키도록 함.

1월 21일

• 천주교 서책 소각과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강화를 지시함.

• 남종삼 · 홍봉주 등 천주교 신부들을 한강가 새남터에서 사형을 집행함. 외국인 신부 베르누(Berneux), 도리(Dorie) 등을 노량진 모래사장에서 효수함.

1월 23일

• 천주교 선교사 김장운(金長雲) · 최형(崔炯) 등의 사형을 집행함.

1월 25일

• 선교사 뿌르티에(Pourthie)와 쁘티니콜라(Petitnicolas), 조선인 선교사 정의배(丁義培) · 우세영(禹世英)을 사형하고 노량진에 효수함.

2월 1일

• 경복궁영건도감의 공장(工匠) 3,620명에게 각 1전씩 나누어 줌.

2월 7일

• 선교사 다블뤼(Daveluy) · 오메트르(Aumaitre) · 위앵(Huin), 신도 황석두(黃錫斗)가 효수됨.

2월 11일

• 이원명(李源命)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13일

•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임금의 친정이 시작됨.

2월 27일

• 한정교(韓正敎)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2일

• 김익문(金益文)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5일

• 동십자각 부근의 경복궁 영건공사장 화재로 가가(假家) 800여 칸과 목물(木物)이 소실됨.

3월 6일

• 중희당(重熙堂)에서 민치록(閔致祿)의 딸을 왕비로 간택함.

3월 25일

• 박제소(朴齊韶)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26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문 · 무과 시험을 시행하여 문과 10명, 무과 109명을 뽑음.

• 한성부 안에 쌀값이 폭등함.

4월 4일

• 이도중(李imagefont重)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10일

• 이선익(李宣翼)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24일

• 이재원(李載元)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0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첫 번째 기우제를 지냄.

• 한성시소(漢城試所)를 금위영으로 이전함.

5월 13일

• 한계원(韓啓源)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9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두 번째 기우제를 지냄.

5월 23일

• 남단과 우사단에서 세 번째 기우제를 지냄.

5월 28일

• 북교와 사직단에서 네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28일

• 이원명(李源命)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7일

• 청나라 정부로부터 프랑스 군함이 조선을 공격한다는 소식이 한성에 도착함.

7월 11일

• 한성부 동부 전관교(箭串橋)에서 대낮에 강도행각을 한 창고지기 조수종(趙秀宗)을 효수형에 처함.

7월 15일

• 홍순목(洪淳穆)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30일

• 척사윤음(斥邪綸音)을 전국에 하달하고 언문으로도 방방곡곡에 게시함.

8월 1일

• 천주교 신도 김면호(金勉浩) · 김문원(金文遠), 흥선대원군의 하인 이연식(李連植) 등을 효수함.

8월 4일

• 송정화(宋廷和)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7일

• 한정교(韓正敎)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15일

• 프랑스 군함이 리델(Ridel) 신부를 태우고 손돌목을 거쳐 한강 본류에 진입함.

8월 17일

•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양천현 염창항(鹽倉項)에 정박함.

8월 18일

• 프랑스 군함이 양화진(楊花津)을 거쳐 서강(西江)인 마포까지 침투함.

8월 19일

• 어영청 중군 이용희(李容凞)가 군사를 거느리고 서강에 나가자 프랑스 군함 2척이 한강으로부터 퇴거함.

9월 6일

• 프랑스 군함 2척이 갑곶진(甲串津)에 상륙함.

9월 7일

• 훈련대장 이경하(李景夏)를 장군으로 하고 총융사 신관호(申觀浩), 중군 이용희(李容熙)로 하여금 한강을 지키도록 함.

• 경복궁 중건공사 시작 후 원납전 1만 냥 이상 낸 자는 심사 후 입진(入進)하도록 함.

9월 23일

• 전민(廛民)들이 낸 원납전(願納錢) 1천 냥을 군수(軍需)에 충당함.

9월 25일

• 모화관에서 청의 사신을 접견하고 다례를 행함.

10월 9일

• 천주교 신자들을 총융청 밖에서 효수함.

10월 12일

• 프랑스 로즈(Roze) 제독이 한강 하구의 봉쇄를 해제한다고 선포함.

• 임영수(林永洙)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0월 17일

• 천주교 신자 성연순(成連順) · 원윤철(元允哲) 등을 효수형에 처함.

11월 6일

• 궁핍한 국비의 충당을 위해 금위영에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함.

11월 7일

• 조계승(趙啓昇)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22일

• 신명순(申命淳)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2일

• 주전소(鑄錢所) 화재로 금위영 창고까지 번져 소실됨.

12월 10일

• 당백전(當百錢)의 통용이 이루어짐.

12월 11일

• 최주형(崔週亨)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20일

• 장보각(藏譜閣)의 실화로 어진(御眞)을 냉천정(冷泉亭)으로 옮김.

12월 29일

• 사직단에서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냄.

12월 30일

• 한성부에서 1866년 전국의 호구 수를 올림. 한성부 인구 20만 59명, 4만 5,6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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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19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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