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22년, 임오년(壬午年), 1822년

조선 순조 22년, 임오년(壬午年), 1822년

1월 9일

• 김노응(金魯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1821년 회계장부를 올림.

2월 19일

• 임금이 화성 행궁에서 유숙(留宿)함.

2월 20일

• 건릉(健陵)과 현륭원(顯隆園)에서 배알(拜謁)하고 제사를 올림.

2월 21일

• 임금이 화성에서 환궁함.

2월 26일

• 식년감시(式年監試) 초시를 설행함.

3월 11일

• 예조에서 한성의 충신으로 참의 이사규(李士珪), 효자로 통덕랑 유언순(兪彦淳) 등 3명, 효녀로 이유(李維)의 처 김씨, 열녀로 윤치준(尹致準)의 처 임씨(林氏) 등 11명을 보고하자 분등(分等)하여 초계(抄啓)함.

3월 25일

• 조만 원(趙萬元)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3월 2일

• 식년감시(式年監試) 복시(覆試)를 설행함.

윤3월 8일

• 건릉(健陵)의 보토(補土) 역사가 완료됨.

윤3월 17일

• 식년 문 · 무과 복시(覆試)를 설행함.

윤3월 22일

• 인정전에서 춘도기유생(春到記儒生)을 시험하여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수석한 자를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4월 3일

• 헌릉(獻陵)의 정자각(丁字閣) 수리가 완료됨.

4월 4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식년 문 · 무과 전시를 시행하여 문과 39명, 무과 46명을 뽑음.

4월 14일

• 이희갑(李羲甲)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25일

• 괴질이 유행함.

4월 28일

• 한성에 모여든 기민이 괴질로 사망하여 구휼함.

5월 13일

• 임금이 세자와 함께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6월 6일

• 죄질이 가벼운 죄수를 석방함.

6월 9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첫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12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두 번째 기우제를 지냄.

7월 9일

• 한치응(韓致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22일

• 괴질이 계속되자 여제(厲祭)를 지내도록 함.

8월 24일

• 정릉(貞陵)과 건릉(健陵)의 사초(莎草)를 수개(修改)한 대신들에게 상을 내림.

9월 1일

• 포도청의 포교와 승정원의 하속들이 패를 지어 싸우는 사건이 발생하여 거리에서 모두 곤장 30대를 치고 충군(充軍)함.

10월 4일

• 혜릉(惠陵)의 사초(莎草)를 수개(修改)한 대신들에게 상을 내림.

10월 13일

•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임금이 감선(減膳)함.

10월 27일

•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을 시험하여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수석한 자를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12월 6일

• 죄가 가벼운 죄수들을 석방함.

12월 26일

• 가순궁(嘉順宮,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이 보경당(寶慶堂)에서 죽음. 빈궁(殯宮)을 환경전(歡慶殿)으로 정함.

12월 29일

• 가순궁의 원호(園號)를 휘경(徽慶)으로 하고, 시호(諡號)를 현목(顯穆)으로 함.

12월 30일

• 한성부에서 전국의 백성 수를 올림. 원호 153만 4,238호 인구 647만, 570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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