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23년, 계미년(癸未年), 1823년

조선 순조 23년, 계미년(癸未年), 1823년

1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1822년 회계장부를 올림.

1월 19일

• 가순궁(嘉順宮)의 원소를 배봉산(拜峯山, 동대문구에 소재)으로 정함.

2월 26일

• 임금이 가순궁(嘉順宮)의 영가(靈駕)를 홍화문 밖에서 보냄.

3월 19일

• 경과(慶科)의 무과 초시(初試)를 시행함.

4월 7일

• 《선원보략(璿源譜略)》의 증수가 완료됨.

4월 10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정시 문과를 시행하여 10명, 훈련원에서 무과를 시행하여 62명을 뽑음.

4월 13일

• 성균관에서 삼일제(三日製)를 행함.

4월 20일

• 김기후(金基厚)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22일

• 순릉(純陵)의 수축을 담당한 신하들에게 상을 내림.

5월 10일

• 명온공주(明溫公主)의 부마 간택을 위해 15세에서 12세까지의 남자에게 금혼령을 내림.

5월 11일

• 한치응(韓致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23일

• 김이교(金履喬)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2일

• 명온공주(明溫公主)의 부마로 진사 김한순(金漢淳)의 아들 김현근(金賢根)을 정하고 동녕위(東寧尉)라 함.

6월 29일

•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함.

7월 20일

• 명온공주의 가례(嘉禮)를 행함.

7월 28일

• 임금이 태묘와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8월 3일

• 정만석(鄭晩錫)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10일

• 금위영의 석수(石手) 최영득(崔英得)이 숭례문 근처의 체성(體城)을 헐다가 체포되어 효수형에 처함.

8월 20일

• 김노응(金魯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6일

• 김재창(金在昌)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17일

• 신주를 태묘에 배향한 일에 대한 경과(慶科) 전시를 춘당대(春塘臺)에서 설행하여 문과 5명을, 무과 62명을 뽑음.

9월 18일

• 김기후(金基厚)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0월 17일

• 조봉진(曺鳳振)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0월 27일

• 휘경원(徽慶園)에 보토(補土)와 식목을 마친 양주목사에게 가선(嘉善)의 품계를 내림.

11월 3일

• 임금이 경모궁(景慕宮)에서 희생(犧牲)과 제기(祭器)를 살피고 재숙(齋宿)함.

11월 4일

• 경모궁에 제사를 지내고 왕세자가 아헌례(亞獻禮)를 행함.

11월 12일

• 비변사에서 서류소통절목(庶類疏通節目)을 정하여 올림.

11월 26일

• 성균관에서 황감제(黃柑製)를 설행하여 수석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함.

12월 8일

•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함.

12월 15일

• 박종훈(朴宗薰)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연관목차

1116/1457
신유년(辛酉年), 18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