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9년, 기사년(己巳年), 1809년

조선 순조 9년, 기사년(己巳年), 1809년

1월 2일

• 한성의 100세 이상 노인 43명에게 하비(下批)함.

1월 7일

• 임금이 영희전(永禧殿)과 경모궁(景慕宮)에서 전배함.

1월 12일

• 반궁(泮宮)에서 인일제(人日製)를 설행함.

1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1808년의 회계장부를 올림.

1월 16일

• 춘당대에서 춘도기유생(春到記儒生)을 시험하여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수석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1월 22일

• 임금이 경춘전(景春殿)에서 혜경궁(惠慶宮)에게 치사(致詞) · 전문(箋文) · 표리(表裏)를 올림.

1월 27일

• 경모궁(景慕宮)에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함.

2월 4일

• 박종래(朴宗來)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13일

• 의릉(懿陵)에서 전알(展謁)하고 제사지냄.

2월 27일

• 임금이 경춘전(景春殿)에서 혜경궁(惠慶宮)에게 진찬(進饌)을 올림.

3월 7일

• 춘당대에서 서북별부료(西北別付料)의 시사(試射)를 행함.

3월 10일

• 저경궁(儲慶宮) · 육상궁(毓祥宮) · 연호궁(延祜宮) · 선희궁(宣禧宮) · 장보각(藏譜閣) · 의소묘(懿昭廟)에서 전배(展拜)함.

3월 11일

• 희정당(熙政堂)에서 문신강(文臣講)을 행함.

3월 12일

• 희정당(熙政堂)에서 문신제술(文臣製述)을 행함.

3월 14일

• 희정당(熙政堂)에서 한학문신(漢學文臣)의 강(講)을 행함.

3월 20일

• 희정당(熙政堂)에서 무신강(武臣講)을 행함.

4월 20일

• 춘당대에서 문 · 무신의 삭시사(朔試射)와 무신 당상의 별시사(別試射)를 행함.

4월 25일

• 박윤수(朴崙壽)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4일

• 신대현(申大顯)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5일

• 경모궁(景慕宮)에서 전배(展拜)하고 생기(牲器)를 살핀 후 재숙(齋宿)함.

5월 9일

• 산실청(産室廳)을 설치함.

5월 12일

• 이면긍(李勉兢)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4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기우제를 행함.

5월 17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기우제를 행함.

5월 19일

• 이집두(李集斗)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20일

• 남단과 우사단에서 세 번째 기우제를 지냄.

• 가뭄이 계속되어 죄가 가벼운 죄수들을 석방함.

5월 23일

• 사직과 북교(北郊)에서 네 번째 기우제를 지냄.

5월 26일

• 종묘에서 다섯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3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여섯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6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일곱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9일

• 남단과 우사단에서 여덟 번째 기우제를 지냄.

6월 11일

•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내림.

6월 17일

• 경외(京外)의 죄수들을 판하(判下)하여 23명을 살려줌.

7월 12일

• 임금이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8월 1일

• 금주(禁酒)를 시행함.

8월 9일

• 원자가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태어남.

8월 15일

• 산실청(産室廳)을 철거함.

8월 19일

• 반궁(泮宮)에서 칠석제(七夕製)를 설행함.

8월 20일

• 임금이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을 시험하여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수석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9월 2일

• 원자(元子) 태봉(胎封)의 길지를 경기 영평현(永平縣)으로 정함.

9월 6일

• 임금이 명릉(明陵)에 전알(展謁)하고 작헌례(酌獻禮)를 행함.

9월 9일

• 임금이 춘당대에서 서총대(瑞蔥臺)와 서북별부료(西北別付料) 시사(試射)를 행함.

9월 18일

• 경희궁 경현당(景賢堂)에서 한학문신(漢學文臣)과 전경문무신(專經文武臣)의 강(講)과 문신의 제술(製述)을 시험함.

10월 4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서 대륜차(大輪次)를 행하여 시취하였는데 윤경진(尹景鎭)은 직부전시(直赴殿試) 하게 하였고, 나머지 우수한 사람들 60명에게는 회시에 응시하도록 함.

11월 3일

• 임금이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하고 생기(牲器)를 살핌.

11월 14일

• 김이도(金履度)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25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증광문무과를 설행하여 문과 43명, 무과 400명을 뽑음.

11월 27일

• 춘당대에 나아가 감제(柑製)를 설행하고 수석을 차지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함.

12월 7일

• 광주유수(廣州留守)의 장계에 따라 광주 진휼에 필요한 미모(米麰) 3천석을 지급하도록 함.

12월 13일

• 대사간 윤익열(尹益烈)이 도성의 구황(救荒)에 대한 방법을 진달함.

12월 15일

• 종부시(宗簿寺)에서 계수(繼修)한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올림.

12월 21일

•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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