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18년, 갑인년(甲寅年), 1794년
1월 2일
• 임금이 사직단에서 재숙함.
1월 3일
• 임금이 사직단에서 곡식이 잘 되기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태묘에 참배함.
1월 4일
• 지방에서 올라온 차사원(差使員) 가운데 사직단에 나아가지 않은 자들에 대하여 목민관으로서 농사를 중시하는 뜻을 모른다 하여 벼슬을 삭탈하고 밖으로 내쫓음.
1월 10일
• 이치중(李致中)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12일
• 임금이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해 가는 길에 관왕묘를 들러 망해정(望海亭)에 머물렀다가 과천에 도착하여 백성들에게 묵은 환곡의 1년 몫을 탕감하여 줌.
1월 16일
• 각사와 각영에서 1793년도의 회계장부를 올림.
1월 19일
• 죄인에 대한 형벌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하루에 곤장을 100대 이상 치지 못하도록 하고, 그 이상을 시행해야 할 경우에는 특별한 명령을 받아 시행하도록 함.
1월 24일
• 교서관(校書館)에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활자로 인쇄하여 올림.
2월 6일
• 경모궁(景慕宮)의 춘향(春享)을 대리하여 지내라고 함.
2월 11일
• 임금이 명정문(明政門)에서 도기유생(到記儒生)의 제술(製述)을 시험하고, 편전에서 강경(講經) 시험을 치러 수석을 차지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2월 13일
• 임금이 편전에서 일차유생(日次儒生)의 전강(殿講)을 행하여 수석을 차지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2월 17일
• 교서관이 정조 5년(1781)과 정조 7년(1783)에 선발된 초계문신들의 시문을 편집하여 인쇄하고 《규화명선(奎華名選)》이라 하여 올림.
2월 21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삼일제(三日製)를 행함. 응시자가 2만 3,900명으로 인정전 뜰에 전부를 수용할 수 없어 금천교 밖까지 늘어 앉도록 하고 시권은 모두 1만 568장이 거두어짐. 수석을 차지한 자를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하고, 100명에게는 회시(會試)에 응시하도록 함.
2월 25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경과(慶科)를 실시함. 나이 80세 이상 19명이 과녁에 화살 3대 이상을 적중하여 모두 합격시킴.
2월 26일
• 임금이 문묘에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춘당대(春塘臺)에 들러 문과와 무과의 시험을 치름. 문과 6명, 무과 31명을 뽑음.
2월 28일
• 춘당대(春塘臺) 정시(庭試) 전시 시험에서 문과 50명, 무과 817명을 뽑음.
3월 10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경과 정시의 급제자 명단을 발표함.
3월 13일
• 임금이 육상궁(毓祥宮) · 연호궁(延祜宮) · 선희궁(宣禧宮)을 참배하고 세심대(洗心臺)에 올라 활쏘기를 함.
4월 11일
• 유당(柳戇)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20일
• 구상(具庠)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9일
• 윤사국(尹師國)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24일
• 형조와 한성부 · 사헌부 · 사간원이 이유없이 5일간이나 나와 일을 보지 않았는데도 승정원에서 추고(推考)를 청하지 않자 해당 승지들을 체차함.
7월 1일
• 이조에서 한성과 지방의 노직(老職)으로 추은(推恩)할 사람 7만 5,145명을 천거함.
7월 12일
• 삼각산 · 목멱산 · 한강에서 기우제를 행함.
7월 14일
•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기우제를 행함.
7월 20일
• 도성 안의 크고 작은 개울과 도랑의 오물을 제거하도록 함.
8월 11일
• 조종현(趙宗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17일
• 성균관에서 칠일제(七日製)를 행함. 2만명이 응시하여 전(箋)과 부(賦)에서 수석한 자를 회시(會試)에 곧바로 응시하게 하고, 차점자 28명에게는 급분(給分)함.
8월 26일
• 이재학(李在學)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9일
• 신사운(申思運)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28일
• 임금이 명릉(明陵)을 참배하고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으며, 경릉(敬陵) · 익릉(翼陵) · 창릉(昌陵) · 홍릉(弘陵)과 순회묘(順懷墓)에 들러 배알함.
9월 30일
• 각 고을에서 내야할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군량미로 받아들이지 못한 4만 2,300섬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중지하고 기한을 연기하여 주며, 각도에 묵은 군량도 특별히 받아들이는 것을 중지하고 기한을 연기해 주도록 함.
10월 18일
• 구익(具)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17일
• 한성부에서 전 포도대장 신대겸(申大謙)이 자기 아비의 묘를 북부의 금지구역 내로 이장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이를 강행하자 체포함.
11월 19일
• 이시수(李時秀)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28일
• 임금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각 능 · 궁 · 묘의 동지(冬至)에 쓸 향축을 직접 전하고 공경히 전송하기를 마친 연후에 선희궁(宣禧宮) · 육상궁(毓祥宮) · 봉안각(奉安閣) · 연호궁(延祜宮)을 차례로 전배(展拜)함.
12월 16일
• 김재찬(金載瓚)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