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21년, 정사년(丁巳年), 1797년

조선 정조 21년, 정사년(丁巳年), 1797년

1월 2일

• 서울과 근교의 100세 이상된 노인 4명에게 가자(加資)를 내림.

1월 12일

• 한성부에서 60세 이상의 빈한한 자들 70명을 뽑아 아뢰자 승지와 한성부좌윤과 우윤을 진휼청에 보내 쌀과 목면을 지급하고, 병들어 오지 못하는 자에게는 낭관이 직접 찾아가 지급하도록 함.

1월 15일

• 각사와 각영에서 회계장부를 올림.

1월 27일

• 신광리(申光履)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29일

• 임금이 현륭원(顯隆園)에 가면서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과 시흥의 주정소(晝停所)에 잠시 머물렀다가 화성 행궁에 유숙함.

1월 30일

• 임금이 현륭원(顯隆園)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올림.

2월 1일

• 임금이 화성 행궁을 떠나 창덕궁으로 환궁함.

2월 4일

• 김문순(金文淳)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10일

•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를 행함.

2월 11일

• 영희전(永禧殿)에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함.

2월 22일

• 황승원(黃昇源)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6일

•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금군의 활쏘기를 시험함.

2월 27일

• 조상진(趙尙鎭)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8일

• 춘당대에 나아가 성균관 유생의 도기강제(到記講製)와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 문신의 제술(製述)과 전경무신(專經武臣)의 시사(試射)를 거행하여 도기강과 제술에서 수석을 차지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함.

3월 7일

• 조종현(趙宗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10일

• 춘당대에 나아가 서북별부료(西北別付料)의 활쏘기를 시험함.

3월 17일

•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4월 8일

• 임금이 태묘에 나아가 전배(展拜)하고 희생(犧牲)과 제기(祭器)를 살핀 다음 재숙(齋宿)함.

4월 9일

• 임금이 태묘에 친향(親享)함.

4월 16일

•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와 전경문무신(專經文武臣)과 일차유생(日次儒生)의 전강(殿講)을 시행함.

• 《증수문원록(增修無冤錄)》이 간행됨.

4월 26일

•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5월 2일

• 날씨가 가물자 준천사(濬川司)에 도랑을 치도록 함.

5월 5일

• 서부 반석방에서 불이 나서 가옥 46호가 불타자 한성부판윤 김문순(金文淳)을 보내 위로하고 진휼청으로 하여금 휼전을 시행하도록 함. 또한 금도초기(禁盜草記)를 즉시 올리지 않은 우포도대장 서유대(徐有大)를 파면하고 이득제(李得濟)를 삼음.

5월 25일

• 윤사국(尹師國)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2일

• 향음(鄕飮)하는 예에 관한 내용의 《향례합편(鄕禮合編)》이 완성되자 주자소(鑄字所)로 하여금 인쇄하여 반포하도록 함.

6월 25일

• 비변사가 역관의 8포(包)를 삼(蔘)으로 충입(充入)하던 것을 은과 삼을 공통으로 포를 채우도록 한 삼포절목(蔘包節目)을 올림.

윤6월 12일

• 임금이 교서관(校書館)으로 하여금 간행하도록 한 《육주약선(陸奏約選)》이 완성되어 인쇄함.

윤6월 22일

•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7월 8일

• 살곶이[箭串] 목장에 있는 말이 병들어 죽자 마조제(馬祖祭)를 설행하도록 함.

• 각영(各營)으로 하여금 정릉(貞陵)의 뒷 봉우리, 안현(鞍峴) 근처, 부아현(負兒峴) 동쪽 등지에 피와 소나무를 심도록 함.

7월 11일

•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도정(都政)을 행함.

7월 20일

• 주자소에서 《오륜행실(五倫行實)》을 인쇄하여 올림.

8월 3일

• 경모궁(景慕宮)에 참배하고 희생(犧牲)과 제기(祭器)를 살펴봄.

8월 15일

• 임금이 장릉(章陵)으로 가는 도중 양천행궁에서 주정(晝停)하면서 연로 백성들의 고통을 물음.

8월 19일

• 어가(御駕)가 화성 행궁을 출발하여 환궁하다가 육신사(六臣祠) · 사충사(四忠祠) · 노강서원(鷺江書院)에 승지를 보내 치제함.

8월 22일

•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도기유생(到記儒生)의 강(講)과 제술(製述)을 시험하여 수석을 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함.

9월 4일

• 조종현(趙宗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9일

• 실화로 호적단자를 소실한 한성부판윤 조종현을 파직하고 조심태(趙心泰)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24일

• 시흥(始興)과 과천(果川)을 수원부(水原府)에 예속시킴.

10월 4일

• 사복시(司僕寺)에서 살곶이목장에 나무를 심도록 신칙할 것을 청하니 이에 따름.

10월 7일

• 임금이 법가(法駕)를 갖추어 관현(館峴)을 경유하여 경모궁(景慕宮)에 참배함.

11월 6일

• 임금이 육상궁(毓祥宮) · 연호궁(延祜宮) · 선희궁(宣禧宮) · 의소묘(懿昭廟)에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봉안각(鳳安閣)과 장보각(藏譜閣)을 참배함.

11월 8일

• 이병정(李秉鼎)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2일

• 이가환(李家煥)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를 행함.

12월 13일

• 훈련원에서 본원(本院)의 절목을 올림

12월 20일

• 주자소(鑄字所)에서 새로 인쇄한 《춘추(春秋)》를 총재관 이하가 궐정에 들어가 의식을 갖추어 올림.

12월 30일

• 화성에서 군제(軍制)와 협수군(悏守軍)에 관한 추가 절목과 수성절목(守城節目)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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