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48년, 임진년(壬辰年)2, 1772년

조선 영조 48년, 임진년(壬辰年)2, 1772년

1월 5일

• 100세가 넘는 사람이 4명에 이르자 특별히 한 자급(資級)을 더하고 세찬을 더 주되 그 가운데 부처(夫妻)가 90세가 넘으면 또한 세찬을 더 주게 함.

1월 8일

• 임금이 학교(學校)를 일으키고, 군정(軍政)을 다스리고, 호구(戶口)를 증가하고, 부역(賦役)을 고르게 하는 일을 팔도의 도신(道臣)과 양도(兩都)의 유수에게 하유(下諭)함.

1월 11일

• 김구주(金龜柱)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월 17일

• 윤동절(尹東晢)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월 23일

•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아가, 세초(歲初)에 곤궁한 백성들에게 혼수(婚需)를 도와주게 하였으나 아직 초기(草記)하지 않은 오부(五部)의 수관(首官)을 잡아들이게 함.

• 사민(四民) 가운데 80세가 된 사람에게 쌀 5두를 내려주고 나머지도 모두 3두씩 주도록 함.

1월 29일

• 오부(五部)의 관원을 불러 혼기(婚期)가 지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물음.

• 경기감사로 하여금 고양(高陽) · 과천(果川)의 수령을 거느리고 입시하게 하여 관에서 도와주는 혼수(婚需)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물음.

2월 12일

• 임금이 근정전 구기(舊基)에 나아가 60세 이상의 기로과(耆老科)를 설행하여 문과 6명, 무과 626명을 뽑음.

2월 19일

• 임금이 집경당(集慶堂)에 나아가 각사(各司)의 구임낭청(久任郎廳)과 오부(五部)의 관원을 불러 품고 있는 생각을 진달하도록 함.

2월 27일

• 경외의 사서(士庶) 가운데 80세 된 어버이를 봉양하는 사람에게 찬수(饌需)를 내려주도록 함.

3월 8일

• 임금이 육상궁(毓祥宮)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행함.

3월 19일

• 승지를 보내 대보단(大報壇)을 봉심(奉審)하게 함.

3월 20일

• 임금이 집경당(集慶堂)에 나아가 충량과(忠良科)를 설행하여 수석을 차지한 김이용(金履鏞)에게 급제를 내림.

4월 10일

• 임금이 북한산성(北漢山城)의 행궁(行宮)에 나아가 시단봉(柴丹峰)에 올랐다가 날이 저물어 환궁함.

4월 11일

• 도둑이 대낮에 도성에서 포교(捕校)를 죽였는데, 포도청에서 붙잡아 정형(正刑)함.

4월 12일

• 가뭄이 오래 계속되니 당상관을 목멱산 · 삼각산 · 한강에 보내 기우제를 행하게 함.

4월 14일

• 중신(重臣)을 보내 용산강 · 저자도에서 비를 빌게 함.

4월 15일

• 비가 내리니 당상관을 보내 보사제(報謝祭)를 행하게 함.

5월 12일

• 흥화문(興化門) · 개양문(開陽門) 두 문의 부장(部將)으로 하여금 승지 외에 금관자(金貫子) · 옥관자(玉貫子)를 단 자는 모두 출입을 금하게 함.

5월 19일

• 임금이 경복궁 교태전(交泰殿) 옛터에 나아가 부복(俯伏)하고, 이어서 문소전(文昭殿) 옛터에 나아갔으며, 경회지(慶會池)에 이르러 소척(掃滌)하는 것을 살핌.

5월 21일

• 임금이 연화문에 나아가 친히 적전(籍田)의 모맥(牟麥)을 받음.

5월 23일

• 임금이 경복궁 문소전(文昭殿) 옛터에 나아가 사배(四拜)하고, 호조에 명하여 문소전 터에 비를 세우게 하고 어필(御筆)로 ‘문소전 옛터에 임진년 5월에 세우다.(文昭殿舊基壬辰五月立)’라고 써서 내림.

5월 25일

• 대신을 남교(南郊)에, 중신을 북교(北郊)에 보내 기우제를 행하게 하고 제문(祭文)을 지어서 내림.

6월 2일

• 중신(重臣)을 보내 우단(雩壇)에서 기우하게 함.

6월 4일

• 비가 내리니 기우제의 헌관(獻官) 이하에게 말을 내림.

6월 15일

• 임금이 숭정전 동쪽 월대(月臺)에 나아가 제주의 표류한 사람들을 불러들여 각각 쌀과 무명을 주고, 연해 고을로 돌아갈 양식을 주게 함.

7월 26일

• 임금이 창의궁으로 환어(還御)하여 문관 · 음관 · 무관으로 하여금 만약 당심(黨心)이 없다면 각기 명첩을 올리게 했는데, 명첩이 늦게 도착했다 하여 경조(京兆)의 낭관을 산배(散配)함.

• 임금이 창의궁에 나아가 훈련대장으로 하여금 기고(旗鼓)를 들이게 하고 오부(五部)의 관원을 어제 바쳤던 명첩(名帖)이 적었기 때문에 잡아들여 세 바퀴 회시(回示)하게 함.

8월 15일

• 임금이 창덕궁에 이어 육상궁(毓祥宮)에 들렀는데, 어악(御樂)을 즉시 거행하지 않았다 하여 장악정(掌樂正) 이진규(李晉圭)를 갑산으로 정배(定配)하고, 선전관 이양옥(李良玉)을 장악정으로 삼음.

8월 17일

• 원의손(元義孫)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8월 18일

• 조중회(趙重晦)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1일

• 임금이 추모현(追慕峴)에 나아가 명릉(明陵)을 바라보고 부복(俯伏)함.

9월 27일

• 임금이 숭의전 동월대(東月臺)에 나아가 구일제(九日製)를 설행하여 수석을 차지한 오언교(吳彦敎)에게 급제를 내림.

10월 16일

• 임금이 덕유당(德游堂)에 나아가 86세 된 사람과 79세 된 사람을 불러들여 표리(表裏)와 미육(米肉)을 내림.

12월 17일

• 임금이 융무당(隆武堂)에서 어의궁(於義宮) 방민(坊民)을 시사(試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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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辛酉年), 18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