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13년, 정사년(丁巳年), 1737년

조선 영조 13년, 정사년(丁巳年), 1737년

1월 1일

• 농사를 권장하고 전국에 효유(曉諭)함. 이어 공인(貢人)의 오래 된 포흠(逋欠)을 감해주도록 함.

1월 8일

• 구성임(具聖任)을 한성부좌윤으로, 김성응(金聖應)을 우윤으로 삼음.

1월 28일

• 이형좌(李衡佐)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3월 10일

• 한성부판윤 유척기(兪拓基)를 특별히 경상도관찰사로 삼음.

3월 14일

• 별시전시(別試殿試)를 행하여 6명을 뽑음.

3월 18일

• 문신의 중시(重試)를 행하여 8명을 뽑음.

6월 4일

• 조정만(趙正萬)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9일

• 옹정(雍正)을 부묘(祔廟)하는 청의 사신이 오니 모화관에서 맞이함.

6월 13일

• 청의 사신이 돌아가니 모화관에서 전송함.

7월 6일

• 가뭄이 심하므로 목멱산 · 삼각산 · 한강에서 기우제를 지내도록 함.

7월 9일

• 용산강 · 저자도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함.

7월 16일

• 임금이 태묘에 나아가는데 비가 내림.

8월 1일

• 홍중주(洪重疇)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8월 19일

• 임금이 건원릉(健元陵) 등 여러 능에 두루 전알하였으며, 회가(回駕)할 때 의릉(懿陵)에 들러 전배(展拜)함.

9월 4일

• 보장(保障)의 중지(重地) 및 변새(邊塞) 관방(關防)의 감사 · 병사 · 수령은 전조(銓曹)에서 직접 차출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근래 문의(問議)하는 일이 잦다 하여 전조에서 직접 차출하도록 함.

9월 13일

• 성균관에서 구일제(九日製)를 행하여 수석을 차지한 진사 박춘보(朴春普)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9월 16일

• 민응수(閔應洙)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21일

• 이진순(李眞淳)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0월 2일

• 날씨가 추우므로 병조에 명하여 위군(衛軍) 370명에게 동옷[襦衣]을 지어 나누어 주게 함.

10월 11일

• 사옹원(司饔院)에 하교하여 감선(減膳)하게 함.

10월 22일

• 제도(諸道)에 신칙(申飭)하여 혼인할 시기를 놓친 사람들을 관찰사가 돌보아 주도록 함.

10월 23일

• 정석오(鄭錫五)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1월 3일

• 병조로 하여금 위사(衛士)의 동옷[襦衣]을 지어 나누어주게 함.

11월 30일

• 홍호인(洪好人)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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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辛巳年), 17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