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43년, 정유년(丁酉年), 1717년

조선 숙종 43년, 정유년(丁酉年), 1717년

1월 1일

• 대정(大政) 때 이조의 낭관(郎官)은 먼저 벼슬을 옮기지 못하고 마지막에야 옮길 수 있게 함.

1월 7일

• 율문(律文) 가운데 전가사변조(全家徙邊條)의 20여 조항을 줄이고 팔도의 감사와 양도(兩都)의 유수에게 반시(頒示)하도록 함.

2월 10일

• 비변사가 온천에 거둥할 때의 진로(津路)를 현종 6년(1665)의 예에 따라 서빙고(西氷庫)를 거치므로 선창을 구축하지 않고 작은 배를 이어서 길을 만들어 어선(御船)에 잇대도록 건의함.

2월 12일

• 온천 가는 길의 지나는 곳과 근처 각 고을의 숙종 42년(1716)의 전세(田稅)와 대동(大同)을 줄이도록 함.

• 가난한 종친을 뽑아 아뢰게 하고, 물건을 내려 급한 사정을 구제하도록 함.

• 대가(大駕)가 출궁(出宮)한 뒤에 날마다 공상(供上)하는 어육(魚肉) 15종을 10종으로 줄이고 연로(沿路) 각 고을의 다담(茶啖)을 모두 그만두게 함.

2월 16일

• 임금의 온천 거둥 때 호조의 별고(別庫)에 있는 쌀과 콩 각 100석을 역졸(驛卒)에게 나누어 주도록 함.

2월 18일

• 진휼청(賑恤廳)에서 기민(飢民) 진구(賑救)에 대하여 상소함.

3월 3일

• 임금이 온양(溫陽)으로 거둥함. 창덕궁을 나가 숭례문을 거쳐 서빙고(西氷庫)의 강가에서 주정(晝停)하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과천 행궁에서 유숙함.

• 훈련도감과 금위영의 군사들이 행궁 밖에 결진(結陣)함.

• 한성에서는 대소 관원이 모두 융복(戎服)을 입고 출입함.

4월 3일

• 대가(大駕)가 과천을 떠나 강을 건너 진두(津頭)에서 주정(晝停)하였다가 창덕궁에 환어(還御)함.

5월 5일

• 진휼청(賑恤廳)에서 굶주리는 백성 이외에 풍문을 듣고 모여든 경기 백성을 합하여 2만 5,200여 명에게 준 건량(乾糧)이 867석임.

5월 12일

• 진휼청에서 한성에 전염병이 만연하여 사교(四郊) 근처의 피막(避幕)에 나가 있는 자가 1천여 명인데, 이들 중 가난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자들을 가려내어 양식을 나누어 주도록 청함.

5월 13일

• 여역에 걸려 피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의사(醫司)로 하여금 따로 의원을 정하여 약으로 각별히 구제하도록 함.

5월 16일

• 임금이 대신들과 정시(庭試)의 설행(設行)과 과거의 폐단 등을 논의함.

5월 26일

• 김창집(金昌集)이 북한(北漢)에 경기감영(京畿監營)을 설치할 것을 건의함.

6월 1일

• 경외(京外)의 전염병이 날로 치성(熾盛)하므로 예조에서 여제(厲祭)를 지낼 것을 건의함.

6월 9일

• 오부(五部)에서 전염병을 앓고 있는 자를 뽑아 피막에 나가게 하고, 의탁할 데 없는 자 3천여 명에게 양식을 지급함.

7월 6일

• 홍만조(洪萬朝)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7일

• 대전(大殿)과 각전(各殿)의 삼명일(三名日)과 탄일(誕日)에 올리는 한성과 지방의 방물(方物) 가운데 물선(物膳)과 삭선(朔膳)은 1718년 가을까지를 기한으로 감면하도록 함.

7월 19일

• 임금이 5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고 안질(眼疾)이 고통스러우므로 세자로 하여금 청정(聽政)하게 하겠다 함.

7월 28일

• 왕세자의 청정(聽政)에 대한 절목(節目)을 반포함.

8월 1일

• 왕세자가 청정(聽政)함. 이에 앞서 예조에서 청정에 대한 의절(儀節)을 올림.

8월 5일

• 문묘의 배위(配位)와 동 · 서무(東西廡)의 종향(從享)에 오서(誤書)된 곳을 다시 고침.

8월 16일

• 호련대(扈輦隊)의 보인(保人) 2,537명 가운데 다시 1,200명을 액수(額數)로 정하며, 여정(餘丁)을 덜어내고 금보(禁保) 749명을 더하여 1만 명을 채우도록 함.

9월 22일

• 1716년에 흉년으로 중단되었던 양전(量田)을 사목(事目)을 마련하여 시행하도록 함.

10월 7일

• 임금이 대신들과 과장(科場)에서의 부자상피(父子相避) 등 과거의 폐단에 대하여 논의함.

10월 13일

• 정시(庭試) 문과 5명과 무과 68명을 뽑음.

10월 26일

• 김창집(金昌集) · 조도빈(趙道彬)이 홍제원에서 청의 사신을 맞이함.

10월 27일

• 청의 사신이 오니 왕세자가 서교(西郊)에서 맞이함.

10월 29일

• 중시(重試)를 행하여 문과 5명과 무과 10명을 뽑음.

11월 5일

• 청의 사신이 돌아가니, 세자가 서교(西郊)에서 전송함.

11월 10일

• 식년전시(式年殿試) 문과 42명과 무과 193명을 뽑음.

11월 14일

• 한성부에서 1717년의 호구총수를 올림. 경도(京都) 오부(五部)의 원호(元戶)는 3만 4,191호, 인구는 23만 8,119명이며, 경도 오부와 팔도의 총 호수는 54만 7,709호, 인구는 682만 9,771명임.

12월 11일

• 홍만조(洪萬朝)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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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辛巳年), 17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