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2년, 병진년(丙辰年), 1676년

조선 숙종 2년, 병진년(丙辰年), 1676년

1월 3일

• 무사만과(武士萬科)를 치르려 하였는데, 팔도의 응시자가 매우 많아 한성에 모두 모으기 어려우므로 중신(重臣)을 각도에 보내 시험하여 뽑아오게 함.

1월 8일

• 곽재우(郭再祐) · 곽준(郭imagefont) · 강감찬(姜邯贊) · 서견(徐甄) · 이원익(李元翼)의 사우(祠宇)에 액호(額號)를 내림.

2월 2일

• 무과 응시 때 1만 명에 가까운 급제자가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마련하기 어렵다 하여 효종 2년(1651)의 예에 따라 백립(白笠)과 백철릭(白帖裏)으로 방(榜)에 응하게 함.

2월 13일

• 청의 사신이 홍제원(弘濟院)에 도착함.

2월 14일

• 영의정 허적(許積) · 호조판서 오정위(吳挺緯) 등이 홍제원에서 청의 사신을 접대하고 돌아옴.

2월 15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청의 사신을 접견함. 청의 사신은 태자(太子)를 책봉하는 일로 조서(詔書)를 반포하기 위하여 옴.

2월 20일

• 지패(紙牌)와 오가작통(五家作統)의 법을 시행하면서 ‘경기의 백성들이 모두 기뻐한다.’고 기만한 조사기(趙嗣基)를 파직함.

3월 4일

• 무과(武科) 등과자(登科者)가 1만 8,251명에 달함. 6형제가 같이 등과한 경우도 있었고, 할아버지 · 아들 · 손자가 같이 등과한 경우도 있음.

3월 8일

• 독서당(讀書堂)을 폐한 지 오래 되었으므로 태학사(太學士)로 하여금 문학을 겸비한 자들을 선발하게 함.

3월 15일

• 청의 사신이 한성에 들어오므로 모화관(慕華館)에서 맞이함.

3월 21일

• 어좌(御座)를 돈화문에 설치하고 문과 9명, 무과 1만 4,207명을 창방(唱榜)함.

4월 1일

• 제도(諸道)에 암행어사를 파견함. 박태상(朴泰尙)을 함경도에, 권환(權瑍)을 평안도에, 유하익(兪夏益)을 황해도에, 박순(朴純)을 경기에, 유명견(柳命堅)을 강원도에, 강석빈(姜碩賓)을 충청도에, 권유(權愈)를 경상도에, 김하천(金厦梴)을 전라도에 보냄.

4월 9일

• 임금이 종묘에 나아가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부묘제(祔廟祭)를 행함.

4월 26일

• 가뭄이 심하여 4월 24일부터 기우제를 행했는데, 연일 비가 내림.

5월 5일

• 이정영(李正英)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11일

• 공주(公州) 유생 김지강(金至剛) 등이 고 한성부우윤 권시(權諰)를 공주 공암서원(孔巖書院)에 배향(配享)하기를 청함.

5월 22일

• 내장(內藏)한 호패사목(號牌事目)을 내림. 인조 4년(1626) 호패 시행을 논의할 때 강정(講定)한 것으로 인출하여 책으로 만듦.

6월 5일

• 왕대비의 병환이 위중하자 경중을 물론하고 재수자(在囚者)를 모두 석방하게 하였는데, 의금부 죄수 14명과 형조 사형수 4명, 그 나머지 죄인 90명이 석방됨.

6월 15일

• 병조에서 양정사핵절목(良丁査覈節目) 10조를 계달(啓達)함.

6월 16일

• 위독한 왕대비의 회복을 위해 증광대과(增廣大科)를 별도로 설치함.

6월 23일

• 장마가 계속되므로 임금이 기청제(祈晴祭)를 지내도록 함.

7월 2일

• 자의공신대왕대비(慈懿恭愼大王大妃)의 존호(尊號)를 휘헌(徽獻)이라 하고, 왕대비의 존호는 현열(顯烈)이라 함.

7월 24일

• 세조(世祖)와 원종(元宗)의 어진(御眞)이 봉안되어 있는 남별전(南別殿)을 1676년 봄에 수개(修改)하도록 함.

10월 1일

• 흉년으로 비축 곡식이 부족하므로 현종 11년(1670)과 12년의 예에 의하여 백관(百官)에게 주는 녹봉(祿俸)의 수량을 감하고, 매달 산료(散料)를 지급하기로 함.

10월 2일

• 활과 화살 · 화살대 · 통개(筒箇) · 갑주(甲冑)를 체부(體府, 체찰사 관아)에 내림.

10월 6일

• 임금이 친히 현종의 담사(禫祀)를 행함.

10월 15일

• 임금이 현종을 태묘(太廟)에 부제(祔祭)함.

11월 11일

• 영의정 허적(許積)이 대내(大內)를 수리하는데 검소하고 절용(節用)할 것을 청함.

12월 19일

• 경외(京外) 사수(死囚)들의 삼복(三覆)을 행하여 법률상 마땅히 죽을 자 11명을 처단하도록 함.

12월 23일

• 적곡(糴穀)의 독촉이 심하여 경기에서 목매 죽는 사람이 있자 거두는 것을 중지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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