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현종 3년, 임인년(壬寅年), 1662년

조선 현종 3년, 임인년(壬寅年), 1662년

1월 11일

• 중외(中外)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기르도록 유시함.

2월 8일

• 유심(柳淰)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2월 11일

• 경덕궁(慶德宮)에서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移御)함.

3월 7일

• 여이재(呂爾載)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15일

• 증광전시(增廣殿試)를 실시하여 문과에서 김석주(金錫冑) 등 40명과 무과에서 조충선(趙忠善) 등 56명을 뽑음.

3월 17일

• 묘시(卯時)에서 저녁 때까지 사방이 마치 먼지가 떨어져 내려오듯 희뿌옇게 흐림.

3월 18일

• 해가 피처럼 붉고 흙비가 내림.

3월 20일

• 기우제를 행하고, 향축(香祝)을 제도(諸道)에 내려 보내 모두 비를 빌도록 함.

3월 26일

• 홍전(洪瑑)을 한성부좌윤으로, 박세모(朴世模)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3월 27일

• 강도(江都)로 이전할 쌀 6천 섬을 떼내어 경기 백성에게 꾸어주기로 함.

4월 16일

• 내수사(內需司)의 면포 7동(同)을 호조에 내려 기참(畿站)의 수요에 보태 쓰게 하라고 함.

5월 11일

• 청의 사신이 한성에 오니 모화관에서 칙서(勅書)를 맞이하고, 인정전으로 되돌아와 반칙례(頒勅禮)를 행함.

• 상평청(常平廳)에서 지난 2월부터 기민(飢民)을 구제하여 왔는데, 보리가 익는 계절이 되었으므로 이를 정지하고 양식을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내게 함.

5월 12일

• 진휼청이 구제하고 남은 쌀 1만 석을 도성민에게 나누어 주고 가을이 되어 이자를 면제하고 환수하도록 함.

5월 14일

• 상납해야 할 관향전미(管餉田米) 4,200석과 대두(大豆) 1,008석을 본도에 놓아두었다가 민간에 조곡으로 나누어주게 함.

5월 16일

• 임금이 남별궁(南別宮) 서연청(西宴廳)에 거둥하여 칙사와 함께 사문(査問)하는 일을 행함.

5월 20일

• 유신(儒臣)이 진달한 여제(厲祭) 제문(祭文)의 규식(規式) 문제를 영의정 정태화(鄭泰和) 등과 논의함.

5월 21일

• 현릉(顯陵)과 목릉(穆陵)의 사토(沙土) 및 곡장(曲墻)이 무너졌으므로 즉시 개수하도록 함.

6월 1일

• 해마다 크게 흉년이 들어 경외(京外)를 막론하고 기근이 심해 백성들이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연명함.

6월 12일

• 고려조의 능침(陵寢)을 봉식(封植)하도록 했는데, 태조의 능은 200보를 한계로 하고 7개 능은 150보를 한계로 정함.

6월 20일

• 전염병이 만연된 상황에서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동 · 서활인서에 수용된 전염병 환자가 2천여 명이며, 사적으로 출막(出幕)한 숫자도 4천여 명에 이르자 빈 가마니를 더 주고 양찬(糧饌)을 지급하게 함.

6월 21일

• 정지화(鄭知和)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 예조가 노산(魯山)과 연산(燕山)의 무덤에 제사지낼 일을 복계(覆啓)함.

6월 25일

• 큰 비가 그치지 않아 도성 내 집이 무너져 압사한 자가 매우 많으므로, 호조에 명하여 각각 면포 두 필 · 쌀 다섯 말을 하사하도록 함.

6월 26일

• 기내(畿內)에 큰 물이 져서 물가의 인가가 많이 떠내려가거나 침몰되었으며, 벼곡식이 침수되어 손상된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

• 사대문에서 기청제(祈晴祭)를 행함.

9월 9일

• 임금이 영릉(寧陵)과 현릉(顯陵) · 목릉(穆陵) · 건원릉(健元陵)을 전알(展謁)함.

9월 12일

• 임금이 노량(露梁) 백사장에 나아가 열무(閱武)함.

10월 2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열무재(閱武才)하고, 문신정시(文臣庭試)를 설행함.

10월 3일

•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관무재(觀武才)를 행함.

10월 24일

• 정시(庭試)를 행하여 문과에서 홍만용(洪萬容) 등 13명을, 무과에서 남홍벽(南弘璧) 등 43명을 뽑음.

11월 11일

• 허적(許積)을 한성부판윤으로, 권우(權堣)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2월 4일

• 청의 사신이 한성에 들어왔으므로 임금이 모화관에 나아가 맞이함. 숭덕황후(崇德皇后) 및 청나라 왕의 생모에게 존호를 올렸기 때문에 온 사신임.

12월 7일

• 청의 사신 2명이 가정(家丁)을 이끌고 삼전도(三田渡) 비각(碑閣)에 가서 살핌.

12월 21일

• 경기 연천(漣川)의 간민(奸民)이 전패(殿牌)를 훔쳤으므로 그 현(縣)을 혁파하고 마전군(麻田郡)에 통합시킴.

연관목차

953/1457
신사년(辛巳年), 17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