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광해군 13년, 신유년(辛酉年), 1621년

조선 광해군 13년, 신유년(辛酉年), 1621년

1월 12일

• 도성 내에 전염병이 심하여 종묘사직과 명산대천에 기도하도록 함.

1월 17일

• 인경궁(仁慶宮) 공사를 시작하는 날에 나오지 않은 한성부와 동부 · 서부 · 중부의 해당 관원들을 추고하게 함.

1월 28일

• 전염병이 심하므로 중신을 보내 종묘사직과 산천에 기도하게 함.

2월 1일

• 인경궁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각도의 승군 1,500명을 추가 배정함.

2월 3일

• 양 궁전의 문에 수문장이 거처할 방을 마련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지키도록 함.

2월 7일

• 명나라에 가는 사은사(謝恩使)로 하여금 경덕궁 수리를 위해 홍전(紅氈) 30부(部)를 추가로 사오도록 함.

2월 13일

• 인경궁 공사에 참석하지 않는 도성 내 장인(匠人)들을 잡아 일을 시키게 함.

윤2월 14일

• 전염병 환자를 도성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했음에도 성내에서 군사들이 앓고 있다 하여 병조당상과 낭청 등을 추고함.

3월 18일

• 경운궁 담장 밖 세 군데 대장소(大將所)에 배정된 군사 13명이 보초를 서지 않았다 하여 해당 분군위장(分軍衛將) 등을 처벌함.

3월 21일

• 도성 안팎의 소나무 벌채를 엄히 단속하라고 명함.

3월 23일

• 전염병이 다시 심해지자 기도를 올리게 하고, 도성 안과 대궐 내 환자들을 동 · 서 활인서에 옮겨 치료하게 함.

3월 27일

• 권진(權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2일

• 윤선(尹銑)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13일

• 남별궁에 거둥하여 조사를 위해 하마연(下馬宴)을 베풂.

4월 23일

• 도성 내 전염병이 심하여 기도를 올리게 함.

• 경창(京倉)이 비었다 하여 전세(田稅) 상납을 독촉하게 함.

4월 24일

• 부교리 한급(韓昅)을 보내 여제(厲祭)를 지내게 함.

4월 25일

• 인정전의 광범문(光範門)과 숭범문(崇範門)에 군사 1명만을 배정한 입직 병조당상과 낭청을 추고하고 2명을 더 배정하게 함.

5월 1일

• 모화관에서 명 사신을 송별하는 연회를 베풂.

5월 7일

• 임금이 인경궁에 거둥함.

5월 15일

•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환궁할 때 길거리에서 광대놀이를 관람함.

6월 18일

• 영건도감이 인경궁 공사에 쓸 목재 2천 개의 비용으로 목면 1천필을 청함.

• 인경궁 영건 공사의 비용에 쓰기 위해 유배자에게 은을 받고 방면하도록 함.

6월 24일

• 도성의 무너진 곳 수축을 위해 영건도감 외 석공으로 하여금 사역하게 함.

8월 7일

• 장세철(張世哲)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8월 11일

• 무과 합격자 중 한성부 오부 출신으로 명부에 주거지가 없는 자가 1천명에 이름.

8월 15일

• 오랑캐가 변경을 침범하지도 않았는데 사대부 가속들이 도성 문을 빠져 나가므로 법사와 포도청으로 하여금 금지하게 함.

8월 17일

• 동부승지 박홍도(朴弘道)의 계에 따라 백령도에서 벤 서까래 5천여 그루를 가져와 인경궁 공사에 쓰게 함.

8월 18일

• 궁궐 내 선인문(宣仁門)을 지나 종루로 나가는 주민들이 많다 하여 선인문 수문장을 추고하게 함.

8월 26일

• 임금이 인경궁에 거둥함.

9월 3일

• 종묘와 알성(謁聖)의 거둥 때 수원과 강화도의 병사들을 징발하여 호위하게 함.

9월 6일

• 인경궁 공사를 위해 사용될 재목을 더 정하여 전라 · 강원 · 공흥도 등에 하유함.

9월 12일

• 경덕궁 북문 안의 삼문을 지을 공장(工匠)들을 불러 들이도록 함.

9월 14일

• 남한산성 수축을 위해 원탁(元鐸)을 광주목사로 임명함.

9월 23일

• 9월 29일 종묘 거둥 때의 호위를 위해 상경하는 수원의 속오군(束伍軍) 300명을 점검하게 함.

9월 24일

• 대거정시(對擧庭試)를 거행하여 박안제(朴安悌) 등 11명을 뽑음.

9월 29일

• 임금이 추숭의 친제를 종묘에서 거행함.

10월 5일

• 지급할 녹봉이 부족하여 여러 창고에 남아있는 세미(稅米)를 모아 반만 지급하게 함.

10월 9일

• 성균관에 나아가 분향례(焚香禮)를 올리고 선세휘(宣世徽) 등 9명을 뽑음.

10월 28일

• 사직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서울과 지방에 대사령을 내림.

11월 3일

• 한성부판윤 윤선(尹銑)이 상소하여 양 감군의 접반사는 그 직무가 중대하므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 하여 의정부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건의함.

11월 9일

• 전 사과(司果) 방수(方守)가 중흥산성(中興山城)의 수축을 청함.

12월 12일

• 지난 밤 도성 내에서 불을 지르고 달아난 도적을 체포하도록 함.

12월 14일

• 한성부의 계(啓)에 의하여, 내빙고(內氷庫)의 장빙(藏氷)을 실시할 때 포수(砲手) · 살수(殺手) · 사수(射手) · 조례(皁隷) 등을 모두 부역시키고, 사한제(司寒祭)를 거행한 후 시작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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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16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