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5년, 무진년(戊辰年), 1868년

조선 고종 5년, 무진년(戊辰年), 1868년

1월 2일

• 김재현(金在顯)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3일

• 조휘림(趙徽林)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12일

• 임금이 경우궁(景祐宮)에 전배(展拜)하고 남연군(南延君) 사우(祠宇)를 지나 운현궁에 나아감.

1월 29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1867년 회계장부를 올림.

2월 12일

• 전라도 부안현에 표류한 청나라 사람 4명을 홍제원(弘濟院)에 유숙시킨 후 청나라로 돌려보냄.

3월 13일

• 임금이 화성 행궁에서 재숙(齋宿)함.

3월 16일

• 화성 행궁에서 환궁함.

3월 19일

• 박영보(朴永輔)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23일

• 삼군부(三軍府)를 다시 설치함.

3월 24일

• 임금이 인정전에서 종묘 하향대제(夏享大祭)에 쓸 서계(誓戒)를 행함.

4월 11일

• 인정전에서 경과(慶科) 과거시험을 치름.

윤4월 7일

• 조선교회 창설자 이승훈(李承薰)의 아들 이신규(李身逵) · 권철신(權哲身)의 증손 권복(權複) 등을 서소문 밖에서 사형에 처함.

5월 10일

•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서 삼반유무(參班儒武)를 실시함.

6월 1일

• 서헌순(徐憲淳)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14일

• 윤정구(尹正求)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2일

• 임금과 왕실이 돈화문을 나와 광화문을 거쳐 완성된 경복궁으로 이어함.

7월 8일

• 임금이 경복궁 근정전에서 정무 보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과거시험을 치름.

7월 12일

• 조석우(曺錫雨)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16일

• 창덕궁 선원전에 있던 어진(御眞)을 경복궁 선원전으로 옮기고 작헌례(酌獻禮)를 행함.

7월 26일

• 임금이 수정전(修政殿)에서 종친부진전(宗親府進箋)을 받음.

8월 16일

• 윤정구(尹正求)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7일

• 영건도감을 설치하고 한성의 각 성문을 개수하도록 함.

11월 20일

• 이승보(李承輔)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7일

• 도성 사대문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의복을 지급하고 남문 밖의 거지들에게 휼전을 내림.

12월 9일

• 유장환(兪章煥)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29일

• 한성부에서 1868년 전국의 호구 수를 올림. 한성부 인구 20만 7,206명, 4만 5,598호.

이해

• 옥천암(玉泉庵)이 정관대사(淨觀大師)에 의해 중창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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