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16년, 기묘년(己卯年), 1879년

조선 고종 16년, 기묘년(己卯年), 1879년

1월 7일

• 성균관에서 인일제(人日製)를 행함.

1월 10일

• 왕이 경모궁(景慕宮)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돈화문에서 공시인(貢市人)들을 만나 의견을 들음.

1월 18일

• 이호촉(李鎬促)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30일

• 한성의 각 관청과 각 군영에서 1878년의 회계장부를 올림.

2월 8일

•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시험하여 합격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하도록 함.

• 유성환(兪晟煥)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7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경과정시(慶科庭試)를 시행하여 문과 15명, 무과 310명을 뽑음.

3월 6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정시문 · 무과(庭試文武科)를 시행하여 문과 7명, 무과 170명을 뽑음.

3월 25일

• 도성 사산(四山)에서의 소나무 남벌을 막지 못한 훈련대장과 총융사 및 금위대장에게 감봉 조치를 내림.

윤3월 9일

• 김원식(金元植)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3월 13일

• 한성부로 하여금 한성으로 오는 일본공사 일행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함.

윤3월 16일

• 건원릉(健元陵) · 원릉(元陵) · 수릉(綏陵) · 경릉(景陵)에 나아가 참배함.

윤3월 17일

• 정기회(鄭基會)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윤3월 21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문 · 무과 전시를 시행하여 문과 49명, 무과 28명을 뽑음.

4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4월 24일

• 경기 중영(中營)의 청수관(淸水館)에 일본대리공사가 주재함.

4월 26일

• 성균관에 도적이 들어 존경각(尊經閣) 책 312권을 도난당함.

4월 27일

• 일본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가 예조에서 청수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성백성들로부터 돌팔매를 맞고 예조판서에게 항의함.

5월 25일

• 이인명(李寅命)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30일

• 한성부에서 무너진 집에 휼전을 베풂.

7월 5일

• 한성부의 홍수로 무너진 집이 933호, 떠내려간 집이 148호에 달하자 압사자(壓死者) 1명당 포(布) 2필과 돈 2냥씩을 지급함.

7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여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8월 4일

• 홍재현(洪在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29일

• 장마로 인해 무너진 도성의 성첩(城堞) 등을 보수하도록 함.

이달

• 북한산성에 있던 경리청(經理廳)을 무위소(武衛所)에 합속시킴.

9월 20일

• 이병문(李秉文)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0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가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11월 15일

• 한성과 경기 토호들의 행패 근절 방안을 마련하고 범법자는 엄히 다스리도록 함.

11월 19일

• 안동별궁(安洞別宮) 영건 장소를 북부 관광방 안국동의 전 정명공주궁(貞明公主宮)의 옛터로 정함.

11월 22일

• 안동별궁의 영건공사를 착수함.

12월 26일

• 이인설(李寅卨)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29일

• 한성부에서 1879년 전국과 서울 오부의 호구수를 보고함. 전국인구 664만 8,610명(남자 334만 1,183명, 여자 330만 7,427명), 호수 194만 4,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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