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18년, 신사년(辛巳年), 1881년

조선 고종 18년, 신사년(辛巳年), 1881년

1월 14일

• 이호준(李鎬俊)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26일

• 한경원(韓敬源)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28일

• 정범조(鄭範朝)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4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인일제(人日製)를 시행함.

3월 27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정시문 · 무과를 시행하여 문과 3명, 무과에서 유석형(柳錫衡) 등을 뽑음.

3월 29일

• 한성과 경기에 횡행하는 도적의 행패를 막을 방도를 강구하도록 함.

4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4월 23일

• 별기군(別技軍)을 창설하여 무위영(武衛營)에 속하게 하고, 일본인 공병 소위 호리모도(堀本禮造)를 교관으로 초빙함.

5월 21일

• 이남원(李南轅)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18일

• 이근필(李根弼)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7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여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7월 22일

• 수정전(壽靜殿)의 전호(殿號)와 당호(堂號)를 써서 내려 보냄.

윤7월 29일

• 김병지(金炳地)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5일

• 김원식(金元植)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19일

• 조봉하(趙鳳夏)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24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서총대(瑞葱臺) 군교를 대상으로 활쏘기 시험을 시행함.

9월 27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구일제(九日製)를 시행함.

10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가을철 3개월간의 회계장부를 올림.

10월 16일

• 《동문휘고(同文彙考)》의 계속 간행여부를 민태호(閔台鎬)를 교정당상관으로 임명하여 살펴보게 함.

10월 20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문 · 무과 전시(殿試)를 시행하여 문과 61명, 무과 384명을 뽑음.

10월 21일

• 정기회(鄭基會)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이달

• 한성에 일본 제일은행(第一銀行) 출장소가 개설됨.

11월 3일

• 선혜청 별창(別倉)에 주전소(鑄錢所)를 설치하고 주조를 시작함.

11월 7일

• 함녕전(咸寧殿)의 화재로 전당(殿堂)과 행각(行閣) 등 150칸이 소실됨.

11월 21일

• 고종이 감공사(監工事)로 하여금 본소(本所)를 분설하여 주전하도록 분부함.

12월 25일

•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서 각영을 2개영으로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절목을 마련하여 보고함.

12월 29일

• 한성부에서 1881년 전국과 오부의 호구수를 보고함. 한성부 인구 18만 8,960명(남자 9만 2,761명, 여자 9만 6,199명), 호수 4만 4,26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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