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시아의 역사

세인트루시아의 역사

가. 식민지 이전

세인트루시아에 최초로 정착한 것은 평화적인 아라와크 족으로, A.D. 200년경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 강 유역에서 이주해 왔다. 그러나 800년경에 세인트루시아로 건너온 호전적인 카리브 인디언들은 섬에서 아라와크 족을 몰아내고 16세기 초엽에 에스파냐가 이 섬을 발견할 때까지 거주하였다.

유럽 세력이 처음으로 세인트루시아를 알게 된 것이 언제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1502년 세인트루시아 인근에서 난파당한 프랑스 선원들이 처음으로 상륙하게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같은 해인 150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설과 에스파냐의 탐험가인 후안 데라코사(Juan de la Cosa)가 발견했다는 설도 있다. 섬을 발견한 것과는 별도로 세인트루시아에 처음으로 정착한 유럽 인은 해적인 프랑수아 르클레르(François le Clerc)였다. 르클레르는 북부의 피전(Pigeon) 섬에 자신의 기지를 만들고, 이곳을 지나가는 에스파냐 선박을 습격하였다. 1605년과 1638년에는 영국 세력이 이곳으로의 진출을 시도했지만 원주민의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세인트루시아는 17세기 중엽까지 유럽의 식민지로 편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으며, 1651년 마르티니크에서 건너간 프랑스 인들이 원주민과 휴전에 합의하고 난 뒤에야 섬에 정착할 수 있었다.

나. 프랑스와 영국 식민 시대

유럽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세인트루시아의 평화는 유지되지 못했다. 18~19세기 초에 네덜란드, 영국, 에스파냐, 프랑스는 세인트루시아를 손에 넣기 위해 무력 충돌을 계속했으며, 그중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심하게 대립하였다. 이 기간 동안 세인트루시아는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배 국가가 14번이나 바뀌었다. 유럽 세력이 세인트루시아를 차지하려고 한 배경에는 전략적인 목적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세인트루시아는 섬이 지닌 천연적인 심해항이 함대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카리브 해에서 적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기에 이상적인 입지였기 때문이다.

1763년 이후로 세인트빈센트와 그레나다에서 이주해 온 프랑스 인들은 세인트루시아에도 면화와 사탕수수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다. 플랜테이션 농장에 필요한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노예로 채워졌는데, 1834년 노예 해방이 선언될 때 세인트루시아에 백인은 2,300명밖에 안 되었지만 흑인 노예는 13,000명 이상이, 신분이 자유로운 흑인은 2,600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기는 세인트루시아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기간이었다. 1770년대 후반 프랑스가 미국 독립 혁명을 지지함에 따라 영국은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세인트루시아를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는 프랑스 혁명 기간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카리브 해 식민지의 설탕 생산 기지에서 창출되는 수익이 전쟁을 지속하는 데 꼭 필요한 자금원이었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시아는 영국과 프랑스가 점유를 반복하다가, 1814년 파리조약에 따라 영국에 영구적으로 양도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시기 동안 끼친 프랑스의 영향은 높은 가톨릭 신자의 비율과 프랑스 어 방언인 파투아 어(patois)를 사용하는 것 등에 잘 남아 있다.

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세인트루시아는 1838년부터 1885년까지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통치를 받았다. 행정권은 영국 여왕이 가지고 있었고, 바베이도스에 주재하는 영국 총독이 다른 윈드워드 제도의 국가들과 함께 세인트루시아를 관할하였다. 세인트루시아 내에는 행정 및 입법 위원회가 지역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세기 접어들어 세인트루시아는 영국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넘겨받았으며, 1924년에는 의회가 만들어졌다. 1958년에는 새로 만들어진 서인도 연방(West Indies Federation)에 속하게 되었으나, 1962년 서인도 연방이 해체됨에 따라 영국에는 국방과 외교만 의존하고 완전한 자치권을 지닌 준국가 형태의 연합주(associate state)가 되었다.

1975년부터 서인도 내의 연합주들이 독립을 추진하였고, 세인트루시아 역시 3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1979년 2월 22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독립 후 처음 치러진 선거에서 좌파 성향의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t. Lucia Labour Party, SLP)이 정권을 차지하여 사회주의 성향의 정책을 추진하고,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확립하였다.

1980년 허리케인 앨런(Allen)이 주력 수출 상품인 바나나 산업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노동당 정권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정치적 불안정과 관광객 급감으로 연결되었다. 1982년 보수 성향의 연합노동자당(United Worker's Party, UWP)이 집권하면서 외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농업 생산력이 회복되면서 관광객이 다시 유입되었고, 국가 경제는 되살아났다. 이후 세인트루시아노동당과 연합노동자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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