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티가 바부다의 역사

앤티가 바부다의 역사

가. 식민 시대 이전

앤티가 바부다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중앙아메리카 일대를 유랑하던 인디언의 한 부족인 시보니 족(Ciboney)으로, 기원전 2400년경 앤티가 섬으로 이주해 왔다. 시보니란 아라와크(Arawak) 언어로 ‘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석기를 이용하고, 조개껍데기 장식을 만들었다. 이들의 흔적은 현재도 앤티가 섬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시보니 족의 뒤를 이어 기원후 35~1100년에 농경을 하는 아라와크 족이 남아메리카 북부의 오리노코 강 유역에서 이주해 오면서 앤티가에 옥수수, 고구마, 콩 등의 작물을 전했다. 1200년경에는 카리브 전역에서 활동하던 호전적인 부족인 카리브 족(Carib)이 섬을 차지하였지만, 주로 거주보다는 식량을 저장하기 위한 기지로 활용하였다.

나. 식민 시대

앤티가 바부다가 서양 세계에 알려진 것은 1493년에 콜럼버스의 2차 항해를 통해서이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에도 원주민의 저항과 현재까지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는 식수 부족 문제로 인해 몇 세기가 지나도록 서양인들의 이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양인들의 본격적인 진출은 17세기 후반에야 시작되어, 1667년 영국인들이 인근의 세인트키츠에 정착하게 되면서 앤티가 바부다 역시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식민지로서의 앤티가 바부다는 곡물의 생산과 반출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초기의 주요 재배 작물은 담배, 생강, 쪽(indigo)이었다. 이후 카리브 해 지역에 대규모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업이 번성함에 따라, 1674년 새로운 사탕수수 농장 부지를 모색하던 리워드 제도의 총사령관 크리스토퍼 코드링턴(Christopher Codrington)은 앤티가 섬에 대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다. 이 시도가 성공을 거두면서 앤티가 섬의 사탕수수 재배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앤티가 바부다는 카리브 해의 영국 식민지 중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곳으로 부상하였다. 현재 앤티가 바부다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대부분 당시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력 공급을 위해 아프리카 서부 연안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후손이며, 이 시기 사탕수수를 가공하기 위해 설치했던 풍차는 현재도 앤티가 섬 곳곳에 100개가량 남아 있다.

18세기 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상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북미의 항구를 대신하는 중요한 전략적 항구의 기능이 추가되는데, 카리브 해의 주요 식민지와 영국을 잇는 핵심 항로를 관장하게 되면서 ‘카리브 해의 관문’으로 불리게 되었다. 1784년에 리워드 함대의 사령관으로 부임한 허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은 앤티가 섬 남부 해안에 군항과 조선소를 세워 리워드 함대 사령부를 구축하였으며, 이것이 현재 주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넬슨 조선소(Nelson's Dockyard)와 잉글리시 항(English Harbour)이다.

다. 근대 이후 현재까지

윌리엄 4세(William Ⅳ) 치하의 영국은 1834년에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여전히 노동력이 부족했던 다른 영국 식민지들이 이 조치에 대해 6년간의 유예 기간을 부여했던 것에 반해, 앤티가 바부다는 즉각적으로 노예의 완전 해방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측면이 아니라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노예들에게 식사와 거처 등을 제공하는 비용보다 자유의 몸이 된 노예들에게 낮은 임금만을 지급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앤티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열악한 환경은 20세기까지도 개선되지 않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설탕 가격이 폭락하고 기근이 발생하면서 앤티가의 설탕 산업은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섬 전체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불만이 증가한 흑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1940년대부터 노동 운동이 활성화되어 앤티가 노동조합(Antigua Trades and Labour Union, ATLU)이 결성되었으며, 1946년에는 앤티가 노동당(Antigua Labour Party, ALP)이 만들어졌다. 노동당을 이끌던 베레 버드(Vere Bird)의 지도를 바탕으로 강력한 노동 운동과 노동자 권리 향상이 이루어지면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주요한 현안이 되었으며, 이후 1966년에 자치령을 위한 신헌법 제정과 1967년에 영국 연방(Commonwealth)의 준국가를 거쳐 1981년에 완전한 독립을 하였다. 초대 총리에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었던 버드가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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