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오브스페인의 역사

포트오브스페인의 역사

가. 식민 이전

포트오브스페인이 위치한 곳에는 원래 비단목화나무(Cumucurapo)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원주민 마을이 있었다. 트리니다드 섬에는 주로 아라와크 족(Arawak)과 카리브 족(Carib)이 거주했다. 원주민 마을은 현재의 도시 서편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원주민들은 주로 어업으로 생활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나. 식민지 시기

포트오브스페인이 자리 잡은 트리니다드 섬은 1498년 7월 31일 콜럼버스의 제3차 항해 때 발견되었으며, 이후 에스파냐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에스파냐는 1542년 트리니다드 섬에 초대 총독을 임명했다. 1560년에는 현재 포트오브스페인의 동쪽 경계에 위치한 라벤틸레(Laventille) 언덕 아래에 에스파냐의 요새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1757년에는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가 현재의 세인트조지프(St. Joseph)인 산호세데오루냐(San José de Oruña)에서 포트오브스페인으로 이전되었다. 1783년에는 프랑스 출신의 가톨릭교도가 정착하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라벤틸레 언덕 주위에 한정되었던 도시의 면적 또한 세인트앤(St. Ann's) 강을 따라 서쪽으로 확대되었다. 격자형의 가로 패턴이 형성되었고, 해변에는 건물이 들어섰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프랑스 인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인근의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다, 과들루프 등의 섬에서 노예들을 데리고 트리니다드 섬으로 이주했다. 에스파냐 정부는 섬의 정착민 수를 늘리기 위해 10년간 토지세를 면제하는 등 유인 정책을 폈다. 트리니다드의 인구는 1777년 1,400명에서 1789년 1만 5,000명으로 증가했고, 설탕과 카카오를 중심으로 농업 경제가 갖추어졌다.

1797년 나폴레옹 전쟁 기간에는 영국군이 트리니다드 섬을 점령했다. 영국군이 상륙했던 장소는 아직까지 ‘침략자의 만(Invaders Bay)’이라고 불린다. 포트오브스페인은 1802년 아미앵 조약(Treaty of Amiens)에 의해 영국에 할양되었다. 그럼에도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로 명목은 유지되었지만, 도시의 주요 거리는 영국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나 유명한 영국 군인의 이름들로 바뀌었다.

1845년부터 인도 출신 계약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트리니다드 섬의 인종 구성이 급격히 달라졌다. 인도, 시리아, 포르투갈, 중국 등 세계 여러 곳의 노동자들이 유입되었다. 인구의 증가로 시가지도 계속 확대되었다. 1803년에 시작된 간척 사업은 1840년대와 1870년대, 1906년에도 계속되었다. 1935년에는 시가지 서쪽 앞바다 해상의 준설토로 서부 지역의 간척이 이루어졌다. 1941년에는 영국과 미국 간 협정으로 트리니다드 섬에 총 17개의 미군 기지가 설치되었으며, 미군은 1960년에 이르러 조차(租借)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다. 독립 이후

1950년대부터 트리니다드의 독립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이후 카리브 연안 영국 식민지 국가들의 연방화가 추진되었다. 1958~1962년까지 포트오브스페인은 영국령에서 서인도 제도 연방(Federation of West Indies)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1961년 자메이카가 연방을 탈퇴하고 독립을 결정하자, 1962년 트리니다드와 토바고도 ‘트리니다드 토바고’라는 이름으로 영국 연방 자치국으로 독립했다. 1976년에는 신헌법을 제정하고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국가 원수를 영국 여왕에서 대통령으로 변경하였지만 영국 연방에는 잔류했다. 1990년에는 급진파 이슬람 단체가 총리와 의회 의원을 5일간 억류하고, 쿠데타를 시도하면서 도시를 약탈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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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자메이카
26. 그레나다
27. 트리니다드 토바고
28. 푸에르토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