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턴의 역사

킹스턴의 역사

가. 식민 시대

자메이카 섬은 1494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었고, 16세기 초부터 에스파냐 인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당시 금과 같은 광물 자원이 발견되지 않아 농업 중심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에는 에스파냐와 라틴아메리카 무역의 중계지 역할을 했다. 1655년 크롬웰(Richard Cromwell)의 파병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킹스턴이 자메이카의 중심지로 개척된 것은 영국의 지배 이후이다. 영국은 자메이카를 점령한 후 제일 처음 팰리세이도스 반도의 맨 끝에 자리한 포트로열을 개척했다. 그러나 1692년의 대지진으로 인해 포트로열이 파괴되자 킹스턴을 새로운 중심지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킹스턴은 17세기까지 주로 해적의 기지로 활용되었지만, 18세기부터 서인도 제도 노예 무역의 거점으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노예 무역이 폐지된 1830년대까지 총 40만 명의 흑인 노예가 자메이카 섬에서 거래되었다. 노예 제도를 바탕으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활성화되었다.

아프리카 노예 무역이 이루어진 도시

아프리카 노예 무역이 이루어진 도시 ⓒ 푸른길

1716년 무렵에 킹스턴은 자메이카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무역 기지가 되었다. 다른 지역의 부유한 상인들이 점차 이곳으로 거주지를 이전하면서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18세기 말에는 킹스턴에 3,000동 이상의 건물이 들어섰고, 무역이 번성했다. 당시 수도였던 스패니시타운(Spanish Town)의 역할이 상당 부분 킹스턴으로 이전되었다. 이때부터 킹스턴은 자메이카의 농업, 상업, 운송 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실질적인 정부 기구의 이전은 1872년에 이루어졌다. 1907년 킹스턴 대지진으로 인해 약 8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당시 시가지의 건물이 상당수 파괴되었다. 1930년대 자메이카에는 대공황 등으로 영국의 식민지 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노동조합의 결성이 활성화되고,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요구를 드러냈다.

나. 독립 이후

자메이카 국민들의 자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1944년에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서 의회를 설치하고 성인의 보통 참정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1953년에는 내각을 수립하였으며, 1959년에는 완전한 내정 자치권을 획득하여 자치 정부를 구성했다. 마침내 1962년 자메이카는 카리브 해 영국 식민지 중 최초로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서 독립국이 되었고, 킹스턴은 자메이카의 수도가 되었다.

1960년대부터 킹스턴의 시가지는 수변 지구를 따라 0.38㎢가량 확대되고, 상점, 사무실 등의 고층 건물과 가로가 건설되었다. 특히 이 중에서 ‘뉴킹스턴(New Kingston)’이라 불리는 새로운 금융 중심지가 건설되어 기존의 너츠포드레이스트랙(Knutsford Racetrack)을 대체했다. 1970년대 경제 불황으로 치안은 불안했고, 관광 산업은 침체기를 겪었다. 1990년대 이후 도시의 구조 및 기능 개선 사업에 힘쓰고 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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