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고베이의 역사

몬테고베이의 역사

가. 식민 시대에서 현대까지

몬테고베이는 1494년 5월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처음으로 상륙한 곳으로, 이 섬에서 유럽 인의 발길이 가장 먼저 닿은 지역이다. 오늘날의 몬테고베이가 입지한 만에 상륙한 콜럼버스는 이 만을 ‘날씨 좋은 만’이라는 뜻의 ‘엘골포데부엔티엠포(El Golfo de Buen Tiempo)’라고 이름 지었다. 1510년에 접어들면서, 이 지역은 에스파냐 인들이 남아메리카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다. 이 지역에 세워진 요새에서 에스파냐 인들은 돼지를 길렀는데 이 때문에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에는 ‘돼지기름의 만’이라는 뜻의 ‘바이아데만테카(Bahia de Mantec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명예혁명으로 1653년에 영국의 호국경(護國卿, Lord Protector: 영국에서 왕권이 미약하였을 때, 왕을 섭정하던 귀족에게 붙이던 호칭)이 된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1655년에 에스파냐령이었던 자메이카를 침공하였고, 섬은 영국군에게 점령당하게 되었다. 이후 1670년에 마드리드 조약을 통해 영국의 자메이카 지배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몬테고베이도 정식으로 영국령에 편입되었다. 몬테고베이라는 지명은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의 지명이었던 ‘바이아데만테카’에 유래하였다.

자메이카가 사탕수수 재배지 및 설탕 생산지로 급부상함에 따라, 18세기 이후 몬테고베이는 사탕수수 및 설탕의 유통 기지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설탕 무역뿐만 아니라 자메이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노예 무역 또한 몬테고베이를 성장시킨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831년 12월 25일에는 노예였던 새뮤얼 샤프(Samuel Sharpe)의 주도로, 30만 명의 노예 중 5분의 1이 참여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봉기가 일어난 날이 크리스마스였다는 데에서 ‘크리스마스 봉기(Christmas Rebellion)’ 또는 ‘크리스마스 혁명’으로 불리게 된 이 사건은 비록 이듬해 1월에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면서 실패로 끝났지만, 서인도 제도의 영국령 식민지에서 일어났던 최대 규모의 노예 저항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2년에 자메이카의 독립과 더불어 몬테고베이는 세인트제임스(St. James) 주에 편입되었고, 1980년에는 시(city)로 승격되었다. 몬테고베이는 휴양지로서의 명성이 높은 도시인 만큼 관광 시설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상업 중심지였던 식민지 시대의 경제력을 이어받아 각종 상공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나. 국제 협약

몬테고베이는 1982년에 체결되어 1994에 발효된 국제연합 해양법 조약(UN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 Ⅲ)이 맺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조약이 체결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몬테고베이 조약’이라고도 불리는 이 조약은 12해리(22.2㎞) 영해 및 200해리(370.4㎞) 배타적 경제수역(EEZ), 국제해저기구의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국제 해양법 조약으로, 오늘날 바다의 주권과 이용에 관한 헌법과도 같은 위치에 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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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하마
25. 자메이카
26. 그레나다
27. 트리니다드 토바고
28. 푸에르토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