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조지스의 역사

세인트조지스의 역사

가. 식민 이전

유럽 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그레나다 섬의 원주민은 아라와크 족(Arawak)이었다. 남아메리카에서 카누를 타고 이주한 이들은 이후 더 강력한 카리브 족(Carib)에 의해 대체되었다. 사냥과 낚시로 생활하던 카리브 족에게 그레나다의 환경은 매우 풍요로워 인구가 계속 증가하였다. 그레나다는 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제3차 항해 시기에 그 존재가 유럽에 알려졌지만, 150년 동안 섬에 정착한 유럽 인은 없었다. 1609년에 영국인들이 정착을 시도했지만, 카리브 족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1649년 자크 뒤 파르케(Jacques du Parquet)를 중심으로 200여 명의 프랑스 인들이 그레나다에 상륙하여 목조 건물을 세우고 요새로 삼았다. 프랑스 인들은 여러 차례 접전을 벌이며 원주민인 카리브 족을 몰아냈다. 1651년에 이르러 카리브 족은 약 40명만이 살아남았는데, 이들은 유럽의 지배를 거부하고 그레나다 섬의 북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 후 이 절벽은 ‘뛰어내리던 사람들의 언덕(Le Morne des Sauteurs)’ 또는 ‘카리브스리프(Caribs Leap)’라고 불린다.

나. 식민 시대

1654년 프랑스 인들은 그레나다 섬 전체를 차지하고 1762년까지 지배하였다. 프랑스는 이 식민지를 ‘라그레나데(La Grenade)’라 부르고, 세인트조지스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어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이 건설되면서 수많은 흑인 노예가 끌려왔다. 17세기 중엽부터 약 100여 년간 영국과 프랑스는 그레나다 섬의 지배를 놓고 경쟁하였다. 그레나다는 1763년 파리조약(Treaty of Paris)으로 영국에게 양도되었고, 1779년 프랑스에 재점령되었다가 1783년 베르사유조약(Treaty of Versailles)으로 다시 영국에 귀속되었다.

1783년 이후 그레나다 섬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급증했다. 식민 지배가 확립되자마자 영국이 그레나다 섬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확대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흑인 노예들을 수입했기 때문이다. 노예 탄압이 심해지면서 1795년 프랑스계 물라토인 줄리언 페동(Julian Fedon)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다. 농장주이자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은 페동은 노예들과 연대하여 일시적으로 섬을 점령하였다. 내란은 곧 종식되었지만 이후 노예들의 반란이 계속되면서, 1833년 그레나다는 노예 제도를 공식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1843년 육두구(肉荳蔲, nutmeg)가 전래된 이후 그레나다의 플랜테이션 농업은 사탕수수에서 카카오와 육두구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1833년부터 1860년까지 그레나다는 영국령인 세인트루시아(Saint Lucia),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바베이도스(Barbados)와 함께 윈드워드 제도 식민지연방(Federal Colony of the Windward Islands)을 구성하였다. 1885년부터 1958년까지 세인트조지스는 기존의 수도인 바베이도스의 브리지타운(Bridgetown)을 대체하여 연방의 수도가 되었다. 1877년부터 그레나다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Crown Colony)가 되어 상당한 자치권을 행사하게 되었고, 1958년 서인도 연방(West Indies Federation)에 가입했으며, 1962년 연방이 해체되면서 다시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에 편입되었다. 이후 1967년 자치권을 획득하여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다.

소앤틸리스 제도를 이루는 국가와 섬들

소앤틸리스 제도를 이루는 국가와 섬들 ⓒ 푸른길

다. 독립 이후

세인트조지스는 1974년 2월 독립을 선언한 그레나다의 수도가 되었다. 1979년에는 무혈 쿠데타가 발발해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이 주도하는 ‘새 보석 운동(New Jewel Movement)’이 정권을 장악했다. 비숍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정부는 1983년 극좌파의 쿠데타로 전복되고, 비숍은 처형되었다. 이때 쿠바와 소련 등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1983년 10월 ‘그레나다 침공’이라고 불리는 군사 개입을 단행하였다. 미국과 동카리브 국가기구(Organization of Eastern Caribbean States)의 군사 개입으로 1984년 2월 1일 그레나다에는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세인트조지스는 2004년 허리케인 이반(Ivan)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상당수 기반 시설과 주택 90%가 파괴되었으며, 그레나다 경제의 기반인 육두구 나무도 큰 피해를 입었다. 현재는 미국, 캐나다, 중국 등의 국제 원조를 통해 재건에 힘쓰고 있다.

연관목차

943/1205
24. 바하마
25. 자메이카
26. 그레나다
27. 트리니다드 토바고
28. 푸에르토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