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연방의 역사

도미니카 연방의 역사

가. 고대

도미니카 연방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은 남아메리카에서 이주해 온 오토로이드 족(Ortoroids) 으로 알려져 있는데, B.C. 3000년경부터 B.C. 400년경까지 거주하였다. 다음으로 A.D. 400년경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 강 유역에서 아라와크 족(Arawaks)이 도미니카 연방을 비롯해 인접한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로 이주하였고, 1400년경에 이주해 온 호전적인 카리브 족(Carib)에 멸망하기 전까지 농경 생활을 하였다. 카리브 족은 오랜 기간 동안 유럽 인들의 식민지화에 극렬히 저항했으나, 현재는 지배력을 상실하고 보호 구역 안에서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나. 프랑스와 영국 식민 시대

도미니카 연방이 유럽에 최초로 알려진 것은 1493년 콜럼버스의 제2차 항해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원주민인 카리브 인디언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유럽 인의 이주는 200여 년이 지나 프랑스 인들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졌다. 프랑스 인들은 주로 목재 벌채와 담배, 커피, 코코아 등의 소규모 농경에 주력했는데, 개간이 확대되고 노동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변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도미니카 연방에서는 노예들도 텃밭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는 것이 허용되어 있어서 이를 통해 재산을 축적하여 자유의 몸이 된 노예들도 있었다. 이 중 상당수가 자영농이 되면서, 대규모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장 일색인 주변 국가와는 달리 소농 중심의 소규모 농업 시스템이 형성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7세기 초부터 영국과 프랑스 간의 패권 다툼으로 여러 차례 지배 국가가 바뀌면서, 외세에 적대적이었던 카리브 인디언의 수는 1647년 5,000명 규모에서 급격히 줄어들어 1730년에는 불과 4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1756년 다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여 몇 번의 전투 끝에, 1761년에 영국이 도미니카 연방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프랑스는 1793년 파리 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섬을 양도했지만, 이후 여러 차례 도미니카 연방을 침공하여 재식민지화를 시도하였다. 1778년에는 미국의 독립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프랑스가 자국의 식민지로 만들었지만, 1783년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다시 영국에 반환했다. 마지막으로 침공했던 1805년에는 수도인 로조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하기도 하였다.

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1834년 영국의 노예 해방이 도미니카 연방에서도 실행되면서, 영국의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832년에 도미니카 연방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인 가운데 단 3명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으나, 1838년에는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였다. 흑인이 중심이 된 의회가 행정부에 흑인 복지 증진을 위한 여러 조치를 시행해 달라는 압력을 가하면서 정치적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이것은 영국이 추구하는 백인 중심의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영국이 확립한 식민 통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도미니카 연방이 본격적으로 현대화된 것은 1939년 서인도 제도 식민지의 열악한 상황을 담은 ‘모인 위원회 보고서(Moyne Commission Report)’가 발표된 후였다. 그 후 20년 동안 영국의 원조로 생활 수준이 개선되고 경제 기반의 확충이 이루어졌다. 높아진 기대감에 따라 1950년대에는 노동자와 농민의 정치 조직화가 이루어졌고, 1961년 선거를 통해 에드워드 올리버 르블랑(Edward Oliver Leblanc)이 이끄는 도미니카노동당(DLP)이 최초로 도시와 엘리트에 의존하지 않고 집권에 성공하였다. 르블랑 총리의 지도로 1967년 서인도 연합주(West Indies Associated States)의 일원이 되면서 외교와 국방만 영국에 의존하는 자치권을 획득했고, 1978년에 완전한 독립 국가로 출범했다. 초대 총리에는 패트릭 존(Patric John)이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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