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범좌수

옥범좌수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지략(智略)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조선
• 신분 : 일반
• 지역 : 영남
• 출처 : 한국구비문학대계 (32)
• 내용 :
신라 때 옥범좌수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보면 눈에 범이 보여 감히 대드는 사람이 없었다. 옥범좌수는 거제 고을 지방에서 자기를 당할 자가 없음을 알고는 나라 구경을 해 보려고 우선 부산포로 해서 경주로 갔다. 경주에 잘 산다는 최부자 소문을 듣고 찾아가니 집에 큰 걱정이 있었다. 이왕(李王)에게 바칠 옥돌 안경을 주문 받아 6개월 후에 납품해야 하는데,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옥돌 안경 하나가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도저히 한 달 안에 다시 만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최부자는 벌을 면치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옥범좌수는 최부자를 찾아가 그것을 자기가 갖다 바치겠다고 하였다. 최부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흘밤낮으로 옥범좌수를 대접하고 서울로 보냈다. 옥범좌수는 안경을 창호지로 열두 번, 비단으로 열두 번 싸서 임금에게 바치러 출발했다. 가는 길에 낙동강을 건너가는 대구로 가는 나룻배를 탔는데 최부자에게 받은 노자가 이미 떨어진 후였다. 그래서 도중에 사공에게 돈이 없다 하자 사공은 돈을 내라하고, 옥범좌수는 돈이 없다하여 시비가 붙었다. 지켜보던 대구의 달성 서씨 젊은이들이 배에서 내려 옥범좌수에게 돈을 내라고 싸움을 걸었다. 젊은이들이 옥범좌수에게 맞아떨어지자 도중에 동문의 싸움을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까지 편을 들며 악을 쓰고 달려들었다.

옥범좌수가 할아버지를 뿌리치며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다!”고 소리를 치자 넘어진 할아버지가 큰일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래서 최부자가 왕에게 갖다 바치는 안경을 들고 있는 것을 얘기하고는 그것을 풀어 보여줬다. 할아버지는 부러져 있는 안경을 보고는 자기가 그런 줄 알고, 겁을 먹고는 옥범좌수를 융성이 대접하여 가문에 지장이 없도록 해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렇게 대접을 받고 서울에 도착하니 약속 기일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냥 들어가기 아까워 서울에 부자로 소문난 윤대감 집에 찾아가서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종이 말렸다. 실랑이가 나 몸싸움에까지 이어졌다. 밖이 시끄럽자 윤대감이 나와 연고를 물으니 옥범좌수가 경주 최부자에게 받아온 안경이 실랑이하는 바람에 부러졌다면서 또 생떼를 썼다. 윤대감 역시 부러진 안경을 보고 겁을 집어 먹고는 옥범좌수를 일주일동안 묵게 하면서 극진히 대접했다.

이윽고 경복궁 앞에 이르러서 또다시 막무가내로 문 앞을 지나려 하니까 병졸들이 옥범좌수를 내 팽개쳤다. 옥범좌수는 같은 수로 병졸들 때문에 안경이 부러졌다고 추궁을 했고, 문지기들은 어쩔 수 없이 왕에게 그것을 보고하였다. 왕이 와서 보고는 안경이 성하였으면 벼슬이라도 주었을 것을 안경이 부러져 버렸으니 그럴 수는 없다 하여, 어떤 벌도 주지 않고 거제도로 다시 내려 보냈다. 이로써 옥범좌수는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대접을 받고 전국 유람을 한 것이다. 그가 죽을 때 논두렁에 물을 대고 누워 자다가 괭이 뭉치에 맞아 죽었는데 그 때는 눈에 범이 없었다고 한다. 욕심이 많아서 자기 밭에만 물을 대려다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죽을 때가 돼서 범이 가버린 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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