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김덕령

의병장김덕령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용맹(勇猛)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조선
• 신분 : 장군
• 지역 : 호남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광주광역시 무등산 자락 충효동 마을에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1567년, 전라도 광주군 성안마을에서 태어난 김덕령 장군은 어려서부터 용력이 뛰어났다고 하는데요.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말을 타고 무등산을 누비며 무술을 닦던 덕령이 ‘자신의 애마와 화살 중 누가 더 빠른가를 겨루는 내기를 걸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용맹스런 자신의 말이 화살보다 더 빨랐으나 늦은 줄로 착각하고 그 자리에서 말의 머리를 베어버렸다는 이야깁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무술을 연마하던 김덕령 장군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익호장군의 호를 받고 전투에 나갔지만 형 덕룡이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중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수습하여 선전관으로서 다시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그리하여 김덕령장군은 왜병의 호남 진출을 막았고, 1594년에는 진해, 고성에 상륙하는 적을 기습 격퇴하는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백 근이나 되는 철퇴를 양 허리에 차고 다녔다는 김덕령 장군. 왜군은 그런 장군의 초상화만 보고도 두려워서 군대를 철수했다는 얘기가 전해져오고 있으니 장군의 기개가 얼마나 높았을지 짐작이 가지요 하지만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김덕령 장군은 조선백성들의 영웅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결국 1596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역모에 연루돼 억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 후 후세 왕들은 그의 공로와 업적을 기려 병조판서에 봉했고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는데요. 광주시 무등산에 있는 충장사에는 충장공의 영정을 비롯하여, 교지가 봉안돼, 장군의 관곽과 의복 등이 전시돼 있는 유물관이 있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군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연관목차

1057/1461
용맹형
의병장김덕령 지금 읽는 중
지략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