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파·벽파

시파·벽파

[ 時派僻派 ]

시대명 조선

조선 영조 때 의 폐위와 사사(賜死)를 둘러싸고 분열된 파당.

무고를 받아 뒤주 속에서 굶어죽은 세자를 동정하는 입장이었던 시파는 대부분 계통이었으며, 세자를 공격해 자신들의 무고를 합리화하려고 했던 벽파는 대부분 노론이었다. 그러나 노론 중에서도 시파가 있었으며 같은 친족간에도 시파와 벽파가 나뉘어지는 등 4색당파는 사실상 해체되고 붕당은 이 두 파로 나누어져 정권을 둘러싼 대립을 계속했다. 장헌세자에 대한 비판과 동정도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명분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정조가 즉위 후 노론 위주의 정국에서 탈피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을 때 시파는 이에 지지를 표했다. 시파라는 이름도 시류(時流)의 이러한 흐름에 편승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양 파의 대립에서는 이전의 4색당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 긍정적 측이면은 거의 사라지고 정권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만이 계속되었다. 순조 즉위 후 일어난 천주교 탄압인 의 경우, 천주교 전통적인 유교적 사회질서를 파괴할까 염려했던 측면도 있었으나 천주교를 연구하는 학자나 신자 중에 시파가 많았으므로 당시 정권을 잡은 벽파가 시파를 탄압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