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상

만상

[ 灣商 ]

시대명 조선

조선사회에서 중국과의 무역에 종사했던 의주(義州) 상인.

만상이라는 이름은 의주를 다른 말로 용만(龍灣)이라고 부르는 데서 연유한다. 만상은 조선 초부터 중국과의 무역에 종사했으나 조선 전기까지는 소규모의 사적 무역에 머물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금속화폐의 유통, 청국과의 무역확대에 따라 그 규모가 커져갔다. 이들은 사신행렬을 따라 북경에 드나들면서 활발한 무역활동을 펼쳤다. 또한 17세기 이래 청국과의 국경시장이 열림에 따라 국경에서의 무역도 활발해졌다.

국경무역은 처음에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관무역(무역)이었으나 점차 사무역(무역)이 더 발전해 18세기 이후에는 상당한 정도로 확대되었다. 이들의 상업활동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자 조선정부는 1707년(숙종 33) 만상에게 사무역을 허용하는 대신 세금을 거두어 국가재정을 보충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만상의 사무역은 더욱 커져갔다. 만상들은 매년 수십만 냥의 은을 중국에 수출했으며 인삼의 수출도 활발했다.

이들은 관리·사신행렬과 결탁해 그들의 활동을 뒷받침했으며, 서울·평양·개성·동래 등 국내의 다른 상인들과도 연결해 무역을 전개했다. 예를 들어 만상이 중국에서 구입한 물품을 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경우도 많았다. 만상의 활동은 중국과의 무역을 개척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점차 상업자본을 형성해가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