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이익

[ 李瀷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681년(숙종 7년) ~ 1763년(영조 39년)
본관 여주(驪州)
이명 : 자신(自新)
: 성호(星湖)
직업 실학자

조선 후기의 자.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본관은 여주.

1705년(숙종 31) 를 보았으나 낙방했으며 이듬해에는 자신에게 학문을 가르쳐주었던 형 잠(潛)이 집권 노론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희생되자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만 열중했다. 자신의 집에 있던 많은 책들과 유교경전 및 관계 서적을 두루 읽었으며 의 글을 탐독했다. 학풍은 대체로 의 사상을 계승했으며, 경제·제도·군사는 물론 천문·지리·문학·풍속·역사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분야의 학문을 깊게 연구했다. 또한 그는 봉건관리와 지배계층의 부패에 대해 통렬하게 공격했으며, 노비제도··문벌제도·미신·중·게으름을 국가 및 농업의 발전을 해치는 좀으로 규정하고 그 해독을 없애고 균전을 통해 자영농을 육성함으로써 농업의 향상과 농민을 보호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화폐경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측면이 많으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밖에도 에도 관심을 쏟아 지리학·의학 등 서양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으며, 땅이 둥글다는 것을 인정하고, 에도 관심을 보이는 등 상당히 합리적인 천문학적 지식을 보유했다. 이러한 이익의 사상은 당시의 신분질서를 부정한 것은 아니며, 봉건제도의 철폐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것으로, 이후의 여러 실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성호학파라고 불리는 일련의 학자군을 형성함으로써 이익은 실학파의 중조(中祖)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영향을 받은 학자는 ··을 비롯해 · 등의 , (李蘗)·권일신(權日身) 등의 천주교 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익은 성호사설>을 비롯해 「」이 수록되어 있는 , 속담을 모아놓은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