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

장시

[ 場市 ]

시대명 조선

일반인을 대상으로 상품을 매매하던 조선시대의 정기시장.

성종 때 전라도에 흉년이 들자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의 건의로 처음 열렸다는 설도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향시(鄕市)와 같은 여러 형태의 시장이 그 이전부터 존재해오다가 15세기 들어 장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상설시장이 아닌 정기시장의 형태를 취한 것은, 아직 생산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상품이 부족했으며 구매력도 충분하지 못해, 상설시장으로는 상인들이 이익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기시장은 마을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열렸으므로 물건을 구매하기에 편리했다는 이점도 있다.

장시는 5일장이 대부분으로 30~40리의 거리를 두고 전국적으로 산재했으며 지역적으로 망을 이루어 상인들이 각 장시를 번갈아 돌아가며 물건을 매매하기에 편리하도록 짜여 있다. 장시에는 인근 주민들이 모여 생필품을 거래했으며, ··감고(監考, 곡식의 되질을 하는 자) 등도 모여들어 활동을 했다. 대부분의 장시는 거래되는 물건에 제한이 없는 보통시장이었으나 곡물시장, 가축시장, 땔감을 공급하는 시탄시장(柴炭市場) 등도 있었다. 이외에도 고기잡이철에 서남해안 등지에서 열리는 파시(波市), 봄·가을로 대구·전주·원주 등지에서 열렸던 약령시 등도 대표적인 특수시장이다.

조선 후기에는 장시의 숫자가 늘어나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9세기 전반기에는 1,000개가 넘었는데 그중 5일장이 900여 개나 되었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라 일부 주요 장시를 중심으로 상업도시가 발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5일장은 근래까지도 농촌 곳곳에서 열렸으나 최근 들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