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대출척

경신대출척

[ 庚申大黜陟 ]

시대명 조선
연도 1680년(숙종 6년)

1680년(숙종 6) 이 정권에서 축출되고 이 정권을 잡은 사건(경신환국이라고도 함).

남인은 1674년(현종 15) 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았으나 이어 왕위에 오른 숙종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숙종이 남인을 신임하지 않은 것은 남인이 으로 갈려서 싸운데다가 남인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80년 남인의 영수 허적이 조부 잠(潛)의 시호를 맞이하는 잔칫날에 이른바 유악(油幄) 사건이 발생했다. 잔칫날에 비가 오자 숙종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용봉차일(龍鳳遮日, 기름칠을 해 비가 새지 않게 만든 천막)을 보내도록 지시했는데 이미 허적이 가지고 갔던 것이다. 이에 노한 숙종은 남인에 대한 의심이 더욱 커져 남인을 요직에서 축출하고 서인을 등용했다.

이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들이 허적의 서자인 허견(許堅)과 종실인 허복창 3형제(복창군(福昌君)·복선군(福善君)·복평군(福平君))가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한 이른바 3복의 변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허적 일가와 남인의 우두머리 윤휴가 처형되고 관련된 남인들이 대거 축출되었으며, 정권은 다시 완전히 서인 손에 돌아갔다. 이 사건을 가리켜 경신대출척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의 정치는 여러 당파가 참여하는 로부터 일당 전제의 형태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