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생산력의 발달

농업생산력의 발달

[ 農業生産力-發達 ]

시대명 조선

(조선 후기) 생산력이란 인간이 자연환경이나 물질에 작용을 가해 필요한 재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리킨다. 따라서 생산력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이 합쳐져 이루어진다. 그러나 생산력의 발전 정도는 대부분 인간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생산활동은 인간의 생활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생산력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도 아울러 변화시킨다. 따라서 생산력이 발전하면 생산관계도 이에 맞춰 변하게 된다.

전근대사회의 생산기반은 농업이므로 농업생산력은 사회전체의 생산력 수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며, 농업생산력의 발전은 사회의 변화와 직결된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을 발전시킨 가장 큰 요인은 저수지 축조 등 수리시설의 발전에 따른 농법의 개량이었다. 특히 논농사에서의 의 확대는 이 시기 농업생산력을 발전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앙법의 확대는 농업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절감하고 수확량을 증가시켰으며, 벼와 보리의 2모작을 가능하게 했다. 밭농사에서는 이 보급되었다. 견종법의 보급 역시 노동력 절감과 수확량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밖에도 비료를 뿌리는 방법이나 종자의 개량, 농기구의 발전도 농업생산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농업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토지를 매개로 한 농촌의 사회관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절감된 노동력을 활용해 넓은 농지를 경작하는 (廣作)이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상업적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농업의 상업화를 촉진시켰다. 이와는 달리 많은 농민들은 토지에서 밀려나와 농업노동자로 전락했으며 광산노동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농업은 점차 적 경향을 띠어갔다.

한편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봉건적 신분제도도 크게 흔들렸다. 농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일부 농민들은 의 지위에 오르거나 지배층과 손을 잡고 새롭게 특권을 누렸으며, 부를 기반으로 봉건지배층과 대립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는 달리 본래 양반이라도 몰락했을 경우에는 사실상 그 지위는 일반 상민이나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봉건사회체제는 극심한 동요를 가져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