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청

어영청

[ 御營廳 ]

시대명 조선

조선 후기 중앙군영의 하나. 1623년(인조 1) 이귀(李貴) 등이 개성에서 군병 260명을 뽑아 화포 쏘는 방법 등을 가르쳐 왕궁을 호위하게 한 것이 시초였다. 24년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피란할 때 왕을 호위했으며 지방에서 모집한 포수들로 보강되었다. 환도 후에는 신설된 총융청에 병합되어 한때 폐지되었다가 정묘호란 이후인 28년 다시 설치되었다. 52년(효종 3) 북벌 계획에 따라 이완을 대장으로 임명하고 어영청을 강화해 어영청군의 수는 2만 1천 명에 이르렀으며 그중 1천 명은 서울에 상주했다. 북벌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다음에도 어영청은 계속 유지되었으나 국방보다 왕권과 봉건정부의 수호라는 성격이 더 강했다. 1881년 군제의 개편에 따라 어영청은 신설된 장어영에 병합되었으나, 이듬해 장어영을 폐지하고 다시 어영청을 세웠다. 이후 별영(別營), 총어청(摠御廳)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