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대첩

행주대첩

[ 幸州大捷 ]

시대명 조선

때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한 싸움.

전라순찰사 은 명군과 힘을 합해 서울 수복을 위해 수원에 머물다가, 명군이 벽제관 전투에서 패하고 개성으로 퇴각하자 1593년 2월 1만여 병력을 경기도 고양군의 행주산성에 집결시켰다. 권율은 행주산성을 새로 수축하는 한편 선거이(宣居怡)·허욱(許頊) 등이 거느리는 관군 및 이 거느리는 의병으로 하여금 시흥·김포·강화 일대에서 지원하게 했다. 왜군은 3만여 병력을 3진으로 나누고 9차례에 걸쳐 성을 맹공격했으나 결국 패퇴했으며, 조선군은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싸움에서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짧게 잘라입고 돌을 날라 왜군에게 던짐으로써 승리에 기여한 데서 지금의 행주치마가 유래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권율은 이 싸움의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다. 격전지인 행주산성은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으로 사적 56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