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

김덕령

[ 金德齡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567(명종 22) ~ 1596(선조 29)
본관 광산(光山)
이명 : 경수(景樹)
직업 의병장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자는 경수(景樹), 본관은 광산.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1593년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전라도로 침입하는 왜군을 격퇴했으며, 조정으로부터 종군명령과 함께 익호장군(翼虎將軍)의 칭호를 받았다. 곽재우와 함께 권율의 막하에 들어가 진해·고성 사이에서 왜군과 대치하며 영남 서부지역을 방어했다. 뛰어난 기습작전으로 왜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혀 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의병장의 하나가 되었다. 96년 이몽학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도원수 권율의 명으로 난을 진압하기 위해 진주로부터 운봉까지 진군하다가 난이 이미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체포된 반군의 무고로 이몽학의 난에 협력했다는 누명을 쓰고 서울로 압송되어 20여 일 동안 6차례에 걸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숨졌다.

체구는 작지만 날래고 용감한 김덕령의 무용은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전설적으로 채색되어 구전 또는 문헌 설화로 전해졌으며 임진록>에 수록되어 역사 군담소설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널리 알려진 <아기장수설화>는 이러한 설화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