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논개

[ 論介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미상 ~ 1592(선조 25)
직업 관기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진주의 관기로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가 끝난 뒤 성을 함락시킨 왜군이 촉석루에서 연회를 베풀자 왜장 게타니(毛谷村六助)를 유인하여 끌어안고 함께 남강에 투신했다. 이 사실이 구전이나 금석문 등에서 전하다가 유몽인이 어우야담>에 이러한 사실을 적고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경종 이후 순국 사실을 국가적으로 인정했으며 영조 때 사당인 의기사(義妓祠)가 세워져 해마다 추모제가 성대히 치러졌다.

이후 의기사는 여러 차례 보수되어 촉석루 옆에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868년 진주목사 정현석(鄭顯奭)에 의해 매년 6월 3일간 치제하는 대규모 추모 행사인 의암별제(義岩別祭)가 행해졌으나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고 그 의식절차만이 전해진다. 19세기 이래 출생, 성장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나오고 있다. 일설에는 기생이 아니라 전라도 장수의 양반 가문 여인으로 성은 주(朱)씨라고 하며, 최경회 또는 황진의 애인이라는 설도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