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일

김천일

[ 金千鎰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537년(중종 32년) ~ 1593년(선조 26년)
본관 언양(彦陽)
이명 : 사중(士重)
: 건재(健齋), 극념당(克念堂)
직업 문신, 의병장

조선 중기의 문신, 당시의 의병장.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자는 사중(士重), 본관은 언양.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왕이 피난하자 전라도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라도 관군과 함께 북상, 수원 독산성에 진을 친 후 한강변의 여러 적진을 공격해 정부로부터 창의사의 칭호를 받았다. 강화도를 근거로 남북 사이의 연결을 꾀하고, 의 명군이 남진 때 도로·지세·적정을 알려줘 작전에 도움을 주는 한편 왜적에 점령된 서울에 결사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명과 사이에 강화회담이 진행되자 이에 반대했으며 행주산성 전투에도 출전해 공을 세웠다. 왜적이 패주하자 이를 추적해 남진했다. 왜적의 전라도 침입을 막기 위해 최경회·의 관군과 의병을 지휘해 10만여 명의 왜군과 1주일 이상의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