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대잡극

산대잡극

[ 山臺雜劇 ]

시대명 조선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 걸쳐 국가의 경사에 채붕(綵棚)을 설치하고 그 위에서 상연한 가무백희(歌舞百戱). 산대잡극이란 산 모양의 높은 채붕을 「산대」라고 부른 데서 연유하며, 연희의 내용은 가악무(歌樂舞)와 기기곡예(奇技曲藝)로 이루어졌다. 고려 때는 나 를 비롯하여 왕의 행차나 개선장군의 환영잔치 등에서 행해졌는데, 조선시대에는 연등회나 팔관회를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산대잡극과 나례(儺禮)는 더욱 성해졌다. 나례를 채붕까지 설치하여 행했으며, 그 성격도 역질(疫疾)을 쫓는 것보다 오락적인 면이 강해져 나례가 아닌 나희(儺戱)로 되어갔다. 또 이를 나례도감 또는 산대도감이 관장하도록 했다. 양란 이후 서서히 빛을 잃어 그 공의(公儀)는 폐지되고 나례로서의 명목만 유지해가자, 연희자들이 지방으로 흩어져 정착함으로써 현존 가면극 형성의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