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사고

[ 史庫 ]

시대명 조선

고려와 조선시대 역대의 을 보관하던 창고.

조선은 고려의 사고를 그대로 이어 한양의 (春秋館) 내사고(內史庫)와 충주의 외사고를 존속시켰다가, 1439년(세종 21) 외사고를 전주·성주에 더 지어 4사고를 운영했다. 때 춘추관과 충주·성주의 사고가 불타고 전주사고본만 유생(儒生) 안의(安義)·손홍록(孫弘祿) 등에 의해 화를 면했다. 1606년 실록을 다시 인쇄하여 춘추관과 새로 선정된 강화·묘향산·태백산·오대산의 5사고에 보관했으나, 춘추관 사고는 24년(인조 2) 과 36년 을 거치면서 흩어져 없어졌다.

이에 남은 4사고는 깊은 산속으로 옮기고 절에 그 수호를 맡겼다. 강화의 정족산 사고는 전등사가, 묘향산 사고를 옮긴 적상산 사고는 안국사가, 태백산 사고는 각화사가, 오대산 사고는 월정사가 그 책임을 맡았으며 이들 절에는 위전(位田)을 주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뒤에는 실록을 모두 본래의 사고에서 옮겼는데, 적상산 사고본은 한국전쟁 때 분실되었고 오대산 사고본은 으로 가져갔다가 1923년 때 불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