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

서인

[ 西人 ]

시대명 조선

조선 중기 붕당의 하나.

1575년(선조 8) 당시 권세가였던 심의겸(沈義謙, 명종비 인순왕후의 아우)과 신진사류 김효원(金孝元)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조 전랑직의 임명을 둘러싸고 대립하게 되자, 이를 계기로 기성사류는 심의겸을, 신진사류는 김효원을 지지함으로써 동서분당이 일어났다. 당시 심의겸의 집은 서울의 서쪽 정동에 있어서 서인이라 했고, 김효원의 집은 서울의 동쪽 건천동에 있었기 때문에 이라 했다.

서인의 사상배경과 학통은 주기철학(主氣哲學)에 입각한 에 있었다. 서인의 대부분은 기호학파의 중심학자인 (李珥)·(成渾)과 교유관계에 있었던 사림들이었다. 1589년(선조 22) 의 난이 일어나자 서인의 이 국옥(鞫獄)을 주관하면서 한때 정권을 잡았으나, 91년 정철이 실각하면서 다시 정계에서 밀려났다. 그 후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권을 주도하게 되었고, 인조 때는 서인의 천하라고 할 만큼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특히 이 시기는 까지 겪은 이후 조선 후기 사회변동과 관련하여 국가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시기였는데, 여기에 서인의 대표적인 학자 (宋時烈)의 정치사상이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인은 숙종 때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져, ·북인과 더불어 4색의 붕당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