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김성일

[ 金誠一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538년(중종 33년) ~ 1593년(선조 26년)
본관 의성(義城)
이명 : 사순(士純)
: 학봉(鶴峰)
직업 문신, 학자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본관은 의성, 안동 출신.

1556년(명종 11) 도산(陶山)의 을 찾아가 수학했으며, 68년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아갔다. 09년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에 파견되었는데,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는 황윤길(黃允吉)과는 달리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92년 경상우도 로 있을 때 이 일어나자, 그 책임을 물어 파직되었으나 의 변호로 다시 경상우도 초유사가 되었다.

그는 관군과 의병을 조화시켜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노력했다. 당시 의병장 (郭再祐)를 돕는 한편, 진주 (金時敏)으로 하여금 의병들과 협력하여 진주성을 보전하게 했다. 정치적으로 에 가담했고, 동인이 ·으로 갈릴 때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학문적으로는 에 조예가 깊어 이황의 (主理論)을 계승하여 의 중추적 구실을 했다.